대통령의 리더십은 나라발전에 중요한 열쇠이다. 권력의 칼을 쥔 대통령의 리더십은 사회발전의 방향타이기도 하다. 우리는 해방 후 많은 대통령의 리더십을 경험한바 있다. 더구나 5년 단임제 대통령제는 앞으로도 많은 대통령을 탄생시킬 것이다. 해방후는 민생고(民生苦) 문제 해결이 우선이었다.
중국, 공자의 말 중에 "사람은 의식(衣食)이 족(足)해야 예절(禮節)을 안다."고 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예의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좋은 구경도 먹은 다음의 일이라는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의 시초라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발달한 부유한 상업 도시국가였었다. 아테네의 부(富)가 민주주의 제도를 탄생시킨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명암이 있지만 경제발전을 우선순위로 한것은 그 시대의 탁견(卓見)이었다. 보리고개가 있었던 시절, 빵 문제해결이 시급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도 리더십이 없을 수 없다. 조갑제씨가 쓴 "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이라는 책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을 더듬어 보겠다.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의 첫째는 화합형 정책 결정이다. 박 대통령은 듣기를 좋아했고 주무 장관이 발안한 정책이 채택되도록 하여 정책에 주인의식을 만들어 주었다. 두 번째는 해당 각료들간에 토론을 충분히 시키고 찬반이 엇갈렸을 때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세 번째는 생산적 회의를 했다. 이 회의를 통해 현실적 정보를 얻었다고 한다.
네 번째는 철저한 확인과 일관된 실천이었다. 현장 시찰을 통해서 집행을 확인하고 수정이 필요할 때는 토론을 거쳐 신속하게 처리했다. 다섯번째는 국민의 각성과 참여를 유도했다. 경부 고속도로 건설을 통해 패배의식을 극복케 했다. 여섯 번째는 정부는 맏형, 기업은 전사(戰士)라고 생각하여 기업이 엔진이라고 생각했다.
일곱 번째, 내각에 권한과 책임을 위임했다. 여덟 번째, 관료 엘리트를 중시하고 학자들은 자문 역활을 하도록 했다. 교수를 행정 집행기관으로 채용치 않았다. 한사람의 대통령 리더십이 사회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나머지 문제는 다음 지도자의 몫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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