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마약을 밀반입한 영국 남성에 대해 영국 정부의 선처 요청을 무시하고 29일 사형을 집행해 파장이 일고 있다. AP 통신은 신강(新疆) 위구르 자치지구 우루무치에서 4kg의 헤로인을 소지한 혐의로 2007년 체포된 영국인, 아크말 사이크가 사형됐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영국 정부가 발끈해서 비난성명을 낸 것은 당연했으리라.
그러나 중국 정부의 마역 사범에 대한 초강력 조치에는 수긍이 갈수도 있다. 특히 영국과의 마약 문제는 중국인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는 꼴이다. 중국의 마지막 왕조였던 청(淸)나라가 국제 사회에서 망신을 당한 것이 1840년과 1842년 사이에 있었던 아편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아편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라 이라 해서 아편 전쟁이라고 까지 이름 붙여졌다.
이 아편 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함으로써 남경조약(南京條約)이 체결되게 되었고 이 전쟁에서의 중국의 참패는 한반도의 조선에도, 바다건너 일본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획기적 사건이었다. 조선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서양의 양이(洋夷)에게 패했다는 뉴스에 귀를 의심했으며 일본의 에도 정부는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청나라는 쇄국정책을 시행하고 광주항(廣州港)만을 개항하여 무역을 허락하였다. 이 광주항의 단골 손님격이 영국의 동인도 회사였다.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비단, 차(茶), 도자기를 수입하고 인도에서 면화를 수입하여 가공한 모직물과 향료(첼)를 중국에 수출했다. 그 당시 국제간의 거래는 은을 화폐로 사용했는데 영국에서 수입하는 차 금액이 엄청나다 보니 영국의 은이 고갈될 정도였다.
영국은 차 대금을 해결하기 위해 인도에서 재배된 아편을 대량으로 비밀 루트를 통해 중국에 팔았다. 그 당시 중국인의 마약 중독자가 무려 10만명에 가까웠으며 심지어 군인들까지도 중독자가 되어 갔다. 청나라 황제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친서를 보냈다. 그 내옹은 이렇다.
"당신들의 성경에 의하면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상대 무역국에 아편까지 팔수있단 말인가"라고. 아편전쟁 후유증으로 홍콩까지 빼앗겼던 중국이 이번의 영국인의 아편사건에 관대한 처분은 무리일 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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