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이야기 중에는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로 시작하는 것이 많다. 실제로 수원 팔달사 벽화에는 담배 피우는 호랑이 그림이 있다. 호랑이가 목에 힘을 잔뜩 주고 거만한 자세로 장죽을 물고, 연약한 토끼의 시중을 받는 모습이다. 아마 한국 민화 가운데 가장 해학적인 그림이 아닐까 싶다.
또 힘세고 날래지만 한없이 어리석어 사람은 물론 토끼나 여우, 까치 등에게 골탕먹는 우스꽝스런 이야기들도 있다.
반면 신통력을 지닌 영물(靈物)로 그려진 경우도 많다. 산신도(山神圖)가 대표적인 예다. 깊은 산 골짜기를 배경으로 기암괴석에 산신이 앉아 있고 옆에는 호랑이가 있는 그림이다. 여기서 호랑이는 산신의 시자(侍者)다. 때론 호랑이 자체가 산신과 동격이 되기도 한다.
또 고구려 벽화의 사신도(四神圖)에도 등장한다. 좌 청룡, 남 주작, 북 현무와 함께 그려진 우 백호(白虎)는 서쪽 방위를 지키는 신수(神獸)다. 더불어 약자와 효자, 의인(義人)을 지켜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도 있다.
호랑이가 한반도에 출현한 것은 3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경남 울주군 대곡리 암벽그림은 우리나라 최초의 호랑이 그림으로 유명하다. 모두 14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먹이사냥 모습 등 풍요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또 청동기 시대의 호형대구(虎形帶鉤)는 벽사(귀신을 물리침)의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호랑이는 우리에게 친근하고 상징적인 동물이었다. 그래서 최남선은 조선을 호담국(虎談國)이라 칭하며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 이집트의 사자, 로마의 이리처럼 조선에서 신성한 동물의 첫번째가 호랑이"라고 했다.
이러한 호랑이도 현실세계에선 사람을 해치는 일이 잦았다. 호환이 잇달자 조선시대에는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전문 병종을 두어 호랑이 포획과 살상을 독려했다. 일제 때 조선총독부는 '해수(害獸) 10년 사살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해서 한국 호랑이는 1921년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 사살된 기록을 끝으로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호랑이의 혼은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적지않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는 경인(庚寅)년, 백호랑이 해다. 산중군자(山中君子)라 불리던 호랑이처럼 늠름하고 슬기로룬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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