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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조선의 숙박시설 - 장세균

전주는 점잖은 고을로 이름이 나있다. 과거 농경 사회였던 때는 전주는 물산(物産)이 풍부하여 사람들 인심이 후하였다. 보부상들이 서로 만나면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데 전주에서 온 보부상들에게는 고개 숙여 특별히 두 번 절을 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전주는 전주 이씨 발상지라 하여 풍패지향(豊沛之鄕)으로 불리워지기도 했다. 전주에는 아직도 객사(客舍)가 남아 있는데 문화재청이 전주객사 이름을 전주 풍패지관(豊沛之館)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객사란 고을 관아(官衙) 근방에 위치해 있으면서 공무(公務)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묵는 숙박 시설이다.

 

현재 객사로 남아있는 곳은 조선 중기때 건축된 것으로써 1471년에 중건한 전주객사 ,1489년에 지은 거제객사, 1581년에 지은 무장객사, 1652년에 지은 밀양객사, 1704년에 지은 부여객사, 1712년에 지은 선성현 객사, 1722년에 지은 낙안객사, 1722년에 지은 완도객사가 남아있을 뿐이다. 객사는 전패(殿牌)를 감실에 모셔놓고 초하루와 보름에 지방의 수령이 임금이 사는 궁궐을 향해 인사를 올리는 향궐망배(向闕望拜) 의식을 거행하기도 하는 곳이다.

 

객사와 비슷한 시설이 원(院)이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중앙의 통치체제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각 지역마다 숙박 시설로써 원(院)을 설치했다. 원(院)은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교통의 요충지나 인가(人家)가 드믄 깊은 산속에 설치해서 국가가 직접 관리했다. 그리고 원을 관리하는 사람에게는 적으나마 소정의 원주전(院主田)을 주어 원의 경비로 사용케 했다.

 

이렇게 설치된 원의 수효가 대략 1300개소 였다고 한다. 지역별로 보면 우리 전라도에 245개소, 경상도에 468개소, 충청도에 212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 전주에만도 19개의 원이 있었으며 전북에서는 익산,김제, 고부, 여산, 임피, 금구, 정읍, 흥덕, 부안, 함열, 태인에도 원이 있었다.

 

객사(客舍)나 원(院)이 지금으로 말하면 공무원들이 업무행위를 묵는 숙박시설이라면 일반인들이 묵는 묵박시설은 우리 귀에 익은 '주막'이다. 대부분 주막은 길가에 위치하여 술과 밥을 팔고 잠자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일반 여론이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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