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문을 열었다. 아니 문을 열었다기 보다 기존 점포를 인수해 재개장했다.
가끔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들리는 곳이어서 유심히 살펴봤다. 우선 편리했다. 개점시간이 종전 오전 8시30분-오후 11시였는데 오전 8시-오후 12시로 늘어났다. 상품의 수량은 비슷했으나 종류가 다양해진 것 같았다. 또 직원들이 더 친절해졌다. 계산할 때면 "얼마를 받고 얼마를 내준다"는 말과 함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후렴이 따랐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직원들은 상당수가 바뀌었다. 남은 직원에게 넌즈시 "월급도 오르고 좋아졌냐"고 물으니 "이제는 월급제가 아니고 시급제"라며 웃어 넘겼다.
대형 유통업체의 시스템이 도입돼 더 세련되어 보였지만 약아진 느낌이 들었다. 의아한 것은 이곳이 아파트 밀집지역인데다 규모가 큰 슈퍼가 하나여서 장사가 잘 되었는데 왜 넘겼을까 하는 점이었다. 전주시 효자동 GS슈퍼 서곡점의 사례다.
이곳이 재개장하자 도내 상인과 시민사회단체 40여 개로 이루어진 중소상인살리기 전북네트워크 관계자들이 기습 개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대기업이 야간에 간판을 바꾸는 기습 개점으로 골목상권까지 장악, 지역경제를 식민화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SSM은 대형유통업체가 1000-3000㎡ 규모로 운영하는 소매점이다. 매장 면적이 대형마트 보다 작고 일반 소매점 보다는 큰 규모다. 최근에는 1000㎡ 미만의 개점도 활발하다. 전국적으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롯데슈퍼, GS슈퍼 등이 대종을 이룬다.
이들과 지역 중소상인과의 마찰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0년대를 전후해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가 지역상권을 초토화시킨다고 해서 떠들썩했다. 그런데 이제는 대형마트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지역 소형마트와의 틈새를 비집고 SSM이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을 앞세운 이들의 공세로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독과점으로 번 돈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게 현실이다. 반면 편리성과 최저가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어정쩡한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나들가게'가 개점을 시작했다. SSM에 맞서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중소기업청이 지원하는 동네 슈퍼다. 다윗의 반란이 성공했으면 싶다.
/조상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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