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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귀화인(歸化人)이야기 - 장세균

 

지난해 한국으로 귀화한 외국인이 자그마치 49개국, 2만 5044명이었다. 이는 정부 수립 후 최대 기록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 중 20%가 한국으로 귀화할 때 한국식 이름과 동시에 한국식 성(姓), 본(本)을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몽골 김씨, 대마도 윤씨, 태국 태씨가 창성(創姓)된 것이다.

 

요근래 귀화인으로써 한국 공기업 사장자리 까지 버젓이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과거에 메스컴을 통해 유명했던 독일출신 귀화인 '이한우'씨였다. 그의 키가 190 센티미터가 넘는 거구에다 한국말을 한국인보다 잘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한국에 대한 애착이 남달리 심하여 이름도 '이한우'에서 참다운 한국인이 되자는 뜻에서 '이참'으로 개명의 용단을 내렸다. 그의 용모를 보지않고 그의 말만 들으면 그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우리 역사상 많은 귀화인 있었는데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사람은 조선 인조때의 박연(朴淵)이라는 네덜란드 출신의 귀화인이다.

 

1653년, 네덜란드 선원이었던 하멜 일행이 일본 나카사키로 향하던중 태풍에 밀려 제주도에 표착하였다. 제주목(濟州牧)의 관헌에게 붙잡혀 심문을 받게 되었는데 통역 할 사람이 없었는데 용케도 서울에 네덜란드 출신의 귀화인, 박연(朴淵)이 있어 그를 제주도로 불러 들였다. 그러나 박연은 조선에 귀화한 후 근 20년동안 자기 모국어를 사용치 않아서 한참동안은 화멜 일행과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난후에야 모국어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 통역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박연(朴淵)의 본명은 '얀,안스 벨테브레 (Jan, Janse, Weltevree)'인데 그 역시 하멜 일행처럼 네덜란드에서 일본 나카사키로 갈려고 하던 중 태풍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하여 조선 관헌에게 붙잡힌 신세가 되었다. 그의 동료 2명과 함께 조선에 귀화하여 훈련도감에 배속받아 무기를 제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병자호란의 전쟁에도 참전하여 그의 동료 2명은 전사했으나 박연은 살아남았고 조선 여인과 결혼하여 자녀를 두기도 했다. 한국식 이름인 김충선(金忠善)은 일본인으로써 임진왜란때 일본병사로 참전했다가 조선으로 귀화하여 용감히 싸워 군공(軍功)을 세우기도 했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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