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파란만장한 일생이었다. (중략)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6년간 감옥에 있었고, 수십 년 동안 망명과 연금생활을 했다. 대통령 후보, 야당 총재, 국가 반란의 수괴, 망명객, 용공분자 등 나의 호칭이 달라질 때마다 이 땅에는 큰 일이 있었다. 그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최근 출간된 김대중 자서전의 서문인 '생의 끄트머리에서'에 나오는 대목이다.
지난해 85세로 작고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권과 남북화해, 경제난 극복, 정보강국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또한 지역감정의 피해자겸 수혜자라 할 수 있다. 이같은 과정에서 '행동하는 양심'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이 책은 1·2권을 합해 1400쪽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그러면서도 웬만한 소설책 보다 재미있다. 생동감도 있다. 2년 동안 41회에 걸쳐 김 대통령이 직접 구술한 인터뷰와 생전의 다양한 기록을 참조해 진실성을 높였다. 김택근 대표집필자의 짧고 유려한 문체까지 더해져 눈길을 떼기 힘들 정도다.
주목할만한 대목도 수두룩하다. 해방공간과 6·25 전쟁때 좌우익으로 부터 목숨을 잃을 뻔한 얘기며, 호남이 당선시킨 박정희 대통령, 납치사건과 일본·미국의 이중적 대응, 광주항쟁, 케임브리지 시절, IMF위기 극복과정, 남북정상회담 비화, 노벨상 수상 등 흥미로운 대목이 곳곳에 펼쳐진다. 그런가 하면 한국 현대사를 끌고 온 이승만 김구 조봉암 윤보선 장면 박정희 이철승 김영삼 김종필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 이명박에 대한 그의 생각도 드러나 있다. 또 카터, 클린턴, 부시, 고르바초프, 헬무트 콜, 스티브 호킹 등에 대한 생각도 눈길을 끈다.
특히 엄혹하던 시절, 옥중에서도 부단히 자신을 갈고 닦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600권이 넘는 책을 정독하고, 50살이 넘어 영어를 독학하고, 봉함엽서 1장에 1만4000자를 써 넣은 편지가 '옥중서신'으로 출간되는 대목은 인간신화라 할만 하다. 눈물 많은 인간적인 면모도 가슴을 울린다.
그런 그에게도 후보단일화와 아들 문제 등에는 회한이 서려 있다.
또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삶의 지혜도 남기고 있다. 부록인 DVD에 수록된 1969년 3선개헌 반대 명연설 등은 사료적 가치도 크다.
그의 자서전이 있어 이번 여름은 풍요로웠다.
/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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