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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고은(高銀) 심포지엄 - 조상진

서정주와 고은은 비슷한 점이 많은 시인이다. 천재적인 기질이 그렇거니와, 출생지가 전북이라는 점, 불교에 귀의했다는 점, 비교적 장수한 점, 노벨상 후보에 단골로 오른 점 등이 그러하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서정주가 체제 순응적이었다면 고은은 반체제적 성격이 강했다고나 할까. 고은은 서정주를 '(시에 있어) 하나의 정부(政府)'라 칭송했다. 그러한 칭송은 후배들이 다시 고은에게 붙여줬다. 그렇지만 서정주 말년에 둘 관계는 서먹했다.

 

어쨌든 이들은 모두 한국문학을 비옥하게 했고, 젊은 시절 기행(奇行) 역시 독보적이었다. 서정주는 18살에 톨스토이즘을 실현한다며 넝마주의로 떠돌았다. 6·25 때는 이명(耳鳴)과 정신이상으로 힘든 세월을 보냈다.

 

고은은 한 수 더 뜬다. 18살에 6·25의 충격으로 아예 머리를 깎고 입산을 했다. 30살 때는 자살 목적으로 제주행 배를 탔으나 술이 너무 취해 실패했다. 이후 제주도에서 고등공민학교 교장 노릇을 하면서 잠 안자고 술마시기, 공동묘지에서 잠자기, 긴 바지 잘라 반 바지 해 입기, 까마귀 잡아 구워먹기, 반주로 4홉 소주 마시기, 모든 말을 '이'발음으로 하기, 한라산 헤매다 조난되기 등 온갖 광태를 부렸다. 이후에도 취중 키스, 취중 구타 등이 이어졌다. 또 만작(晩酌)을 넘어 새벽 술(曉酌) 마시기를 하고 자살 기도 끝에 30여 시간만에 깨어난 적도 있었다.

 

이러한 광기(狂氣)와 한때의 정치 관여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이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는 시대에 대한 저항과 내심에 끓어 오르는 천재성이 폭발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침 고향에서 별로 대접받지 못하던 고은 시인에 대한 심포지엄이 지난주 군산에서 열렸다. 심포지엄에는 문학평론가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가 '실존의 모험, 대지의 서사'를, 도종환 시인이 '유목의 정신, 백척간두의 삶'을 발표했다. 먼저 염 교수는 "고은의 문학은 이제 한반도의 모성적 대지 전체를 그 실물 크기에서 언어화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어 도종환 시인은 "그의 시는 거대한 산과 같다"며 "완성하고 다시 시작하는 부정의 정신"을 핵심으로 꼽았다.

 

문화유적이 현장에 있어야 빛을 발하듯, 고향에서 보물같은 이들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으면 한다.

 

/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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