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9 06:07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오목대] 역사맹(盲) - 장세균

고등학교 교과에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지정한 교과부 방침에 비난 여론이 많다. 우리는 단순히 경제 선진국만을 꿈꾸고 문화 선진국은 외면하는 것 같다. 이런 조치는 자기 나라 역사도 모르는 역사맹(盲), 또는 기억 집단상실증 환자로 만드는 꼴이다.

 

고대 로마의 키케로는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어린아이 수준으로 머무를 수밖에는 없다'고 했다. 역사 지식은 삶의 지혜와 경험의 폭을 넓힌다. 독도 문제도 우리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우리 역사를 모르면 독도는 일본과의 역사전쟁에서 어떤 수모를 당할지 모른다. 점유권만을 내세워 독도는 끝난 문제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독도 문제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만든 합의서가 중요하다. 미국은 연합국을 대표하여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초안을 작성하게 되었는데 제 1차 초안에서 제 5차 초안까지는 독도가 한국영토로 분명히 기재되었으나 6차 초안에서는 놀랍게도 독도가 갑자기 일본 영토로 변경 기재되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영토 욕심이 많은 일본 수상 '요시다 시게루'는 일본 정부 관리를 시켜 미국측에 엄청난 로비를 했다고 한다. 여기에다 일본에 우호적인 일본주재 미국 정치고문관 '제이 시볼트'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시 나온 7차 초안에는 독도가 한국 영토로 다시 기재되었다. 그러자 다시 일본 주재 미국 정치 고문관 시볼트의 로비로 제 8차, 9차 초안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로 변경 기재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50년 8월 7일에 나온 제 10차 초안, 1950년 9월 11일에 나온 '최종 초안'에는 독도가 유엔 총회의 결의에 따라 한국 영토로 다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다시 1951년 5월 3일 이후 만들어진 제 1차 '영미 합동 초안'과 제 3차 '영미 합동 초안'에는 독도는 한국·일본 어디에도 귀속된 것으로 기재하지 않았다.

 

이러는 과정에서 미국 국무성은 그 당시 주미 한국 대사관에게 독도에 대해 문의를 했는데 한국 대사관 직원이 '독도는 다케시마 가까이 있는 섬이라고 생각한다'고 엉터리 답변을 했다는 것이다. '다케시마'라는 일본말이 독도를 가르키는 줄을 몰랐던 것이다. 역사맹(盲)이었던 것이다.

 

/ 장세균 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