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口蹄疫)으로 온 나라가 비상이다. 2월 하순 들어 잦아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이름이 그러하듯 발굽이 갈라진 소나 돼지 등에 나타나는 제1종 바이러스성 가축전염병이다. 감염 동물이나 배설물은 물론 공기를 통해서도 급속히 전염되며 폐사율이 5-55%에 이를만큼 무섭다.
문제는 아직 치료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구제역에 걸린 가축은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모두 도살·매립·소각하고 있다.
이번 구제역은 지난 해 11월 23일 경북 안동에서 발생,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유독 추위에 강해 호남권을 제외하고 전국토가 아비규환의 도살장이 되었다. 불과 3개월 만에 350만 마리에 육박하는 가축이 살처분된 것이다.
이중 돼지가 330만 마리로 가장 많고 소가 15만 마리에 이른다. 이밖에 염소와 사슴도 희생되었다. 돼지는 전체의 1/3이 살처분돼 양돈산업이 붕괴 위기에 몰렸다. 전국 4300여 곳이 이들 가축의 공동묘지가 되었고 피해액만 3조 원에 이른다. 또 구제역과의 전쟁으로 공무원 등 9명이 숨졌다. 살처분과 방역에 나선 수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백신 접종 등으로 간신히 큰 불길은 잡았으나 초기 방역 미흡 등 총체적 대응실패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제 봄이 오면 침출수로 인한 2차 오염피해 등 대재앙이 예고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34년과 2000년 구제역이 발생했다. 이어 2002년과 2010년에 또 다시 발생했다. 빈도가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구제역으로 혼쭐이 난 나라는 우리 뿐이 아니다. 영국은 2001년 소와 돼지 등 700만 마리를 도살했다. 대만은 1997년에 구제역이 발생해 385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했다. 좁은 우리 안에 돼지를 밀식한 탓이다. 그리고 다음이 우리다.
350만 마리는 6·25 전쟁 3년 동안 사망한 200만 명을 훨씬 넘는다. 상상해 보라. 전 국토에 평균 100㎏의 사체 350만 개가 묻혀있다는 사실을.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가축의 몰살이 얼마나 처참한 일인가.
전국의 불교 사찰에서 이들 희생동물의 넋을 위로하는 천도재(薦度齋)가 열렸다. 불교는 모든 생명에 부처가 될 성품이 깃들어 있다고 가르친다. 구제역이 하루빨리 끝나고 눈감은 모든 생명들이 극락왕생하길 빌 뿐이다.
/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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