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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이용구(李容九) - 장세균

친일파가 일제 강점기 전후에 취득한 재산을 국가가 환수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정이 나왔다. 문제제기를 했던 친일 후손들이야 불만이 많겠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에 동의할 것이다.

 

조선을 일본에 팔아먹은 이완용이 일등 매국노라면 이용구(李容九)는 거기에 버금가는 매국노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인지 이완용의 무덤은 이미 파묘(破墓)되어 흔적이 없다 하고 이용구의 유일한 혈손(血孫)이었던 이석규(李碩奎)라는 사람은 일본에서 정신파탄자로 방황하다가 77세로 객사했다고 한다.

 

이것을 두고 악인악과(惡因惡果)요 선인선과(善因善果)라고나 해야할 것이다. 일본은 송병준이라는 사람을 내세워 친일 어용단체를 만들게 했는데 그것이 유명한 일진회(一進會)이고 이용구가 일진회 회장을 맡은바 있다. 그 당시 일진회 회원이 100만명이라고 자랑했다는데 이것은 근거없는 유령숫자라고 한다. 그 당시 조선 인구는 2000만명이었는데 인구의 절반은 미성년이었을 것이고 성년은 아마 1000만명, 그중에서도 여자가 절반이라면 성년 남자는 줄잡아 500만명이었을 것이다. 일진회 회원이 100만명이라면 조선인 다섯 명 중에 한 사람이 친일파였다는 셈이되는데 이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일진회는 한일합방(韓日合邦) 전에 조선과 일본이 서로 합쳐야 한다는 내용의 한일합방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한일합방이 되자 공로금조로 일진회가 받은 돈이 그 당시 돈으로 15만원이었다고 하며 그 돈을 약 300명의 회원들이 분배받았다고 한다.

 

합병의사를 굳힌 1909년에 일본의 이토오 히로부미는 이용구와 송병준(宋秉畯)을 일본으로 불러들여 향응을 베풀어 주었다고 하며 그 당시 돈으로 각각 5000원씩 위로금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 후 2년 뒤 이용구는 핏줄인 딸 하나와 아들 석규를 남기고 갑자기 사망했다. 송병준이 이용구의 아들 석규를 일본 명고옥(名古屋)의 산사(山寺)에 맡겨 기르게 했는데 그동안 수십명의 양육자를 바꿔가며 자란 그는 대학까지 다니다 말았지만 매국노의 아들이란 주위의 눈총 때문에 방탕과 자살기도를 일삼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무국적자로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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