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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베트남과 조완벽 - 장세균

베트남과 우리와의 관계는 1964년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시작되었다고 일반인들은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베트남과 우리와의 인연은 거의 1000년 가까이 된다고 한다. 가까운 지금은 한국산 자동차들이 베트남 고속도로를 질주하는가 하면 10곳이 넘는 대학에서 한국학과를 설치하고 한국어 배우기에 열중하고 있다.

 

한국의 발전상이 베트남의 모델이 된 것이다. 많은 베트남 처녀들이 한국 농촌총각의 배우자가 되어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조선 왕조 실록에 의하면 17세기 초에 베트남 사람들이 표류, 제주도에 왔다가 제주도 관리에게 학살되었던 비극이 있었는가 하면 거꾸로 17세기 말에는 제주도민 수십명이 표류 중 베트남에 갔다가 그 곳 사람들의 호의로 제주도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베트남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수광이 쓴 '지봉집(芝峰集)'에 있는데 그 속에는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때 조완벽(趙完壁)이라는 경상남도 진주 사람이 일본에 끌려갔다가 다시 베트남으로 가게 된 조완벽(趙完壁)의 베트남 경험담이 실려있다.

 

그가 경험했던 베트남 문화에 의하면 북부 베트남 사람들은 남녀 모두가 머리를 묶지 않고 풀어헤치고 다니며 일반인이나 귀인(貴人)들 조차도 신발을 신지않고 다닌다고 했다. 더운 나라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또 조완벽에 의하면 베트남에서는 어른이 되면 치아를 검게 만든다고 했다.

 

이렇게 치아를 검게 물들이기는 베트남뿐만 아니라 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미얀마·태국 그리고 일본과 남부 중국·남부 인도 등 아시아 도처에 걸친 풍속이었던것 같다. 백제가 망하자 백제 부흥운동을 펼쳤던 백제의 흑치상지(黑齒常之) 장군의 흑치(黑齒 )라는 성씨도 그가 백제 22개 담로국의 하나였던 필리핀을 다스렸다는데서 붙여진 것이라고 보고있다.

 

조완벽은 그후, 1607년에 조선의 사신 여우길(呂祐吉)을 따라 조선인 포로(捕虜) 1240명 속에 끼어 10년만에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이렇듯 베트남과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 인연을 맺어왔던 나라다.

 

/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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