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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성년의 날 - 조상진

"대체 어른의 세계란 어떤 것일까? 비단상자를 여는 때처럼 황홀한 것일까? 아버지가 들려 준 마술사의 이야기처럼 신비한 것일까? 술만 먹고 산다는 독사처럼 징그럽고 무서운 것일까?"

 

최정희가 1953년 쓴 장편소설 '녹색의 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지금과 트렌드가 달라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성인이 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황홀하고 신비스럽고 무서운 것일 수 있다. 아니면 그럭저럭 하다 어느새 성인이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16일은 성년의 날이다. 정부가 젊은이들에게 성인으로서의 자각과 긍지, 사회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워 주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성년관련 의식은 옛부터 있어 왔다. "마한에서는 소년들의 등에다 상처를 내어 줄을 꿰고 통나무를 끌면서 그들이 훈련받을 집을 지었다"는 기록 등이 그것이다. 이후 고려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중류 이상에서는 보편화되었다. 그러다 조선 말기의 조혼 경향과 개화기 단발령 이후 서서히 사라졌다.

 

성년의 날이 제정된 것은 1973년이지만 전통적인 성년식에 해당하는 관례(冠禮)는 조선의 4대 전통생활 의식인 관혼상제 가운데 첫번째 의식이었다.

 

남자는 땋아 내렸던 머리를 올려 상투를 틀고 관을 씌운다는 뜻으로 관례라 했고 여자는 머리를 올려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다는 뜻으로 계례라 했다.

 

지금처럼 20세로 고정된 것도 아니었다. 관례는 15-20세 사이, 계례는 15세 되는 해 정월에 날을 정해 치렀다. 본받을 만한 어른을 모시고 3일 전에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아뢴 후 행사를 진행했다. 남자는 행사가 끝나면 아명(兒名)을 버리고 자(字)를, 여자는 당호(堂號)를 지어줬다. 이 때부터는 낮춤말인 '해라'에서 보통말인 '하게'로 높여 불렀다. 또 전에는 절을 하면 어른이 앉아서 받았지만 답배를 해야했다.

 

이웃 일본은 성년의 날인 1월 8일을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18세가 된 젊은이들이 기모노를 입고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선물로 아들에겐 지갑, 딸에겐 핸드백을 선물한다. 이때 재물운이 따르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1만엔을 넣어준다.

 

이같은 성년의 날이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선 성인식으로 둔갑해 대학가 주변 모텔이 만원이라고 한다. 금기를 뛰어 넘음으로써 어른이 됐다고 착각하는 듯하다. 이날이 어른될 준비를 하는 날이었으면 한다.

 

/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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