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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대사습(大私習) 놀이 - 장세균

지난 수십년 동안 전주 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되어온 '전주 대사습 놀이'가 올해 처음으로 경기전과 한옥마을에서 지난 11일과 13일 사이에 열렸다. 우리나라 판소리의 중시조(中始祖)인 송흥록(宋興祿)은 지리산에서 폭포 소리를 능가하는 3년 수련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한다. 그의 이런 성공의 뒤편에는 한 맹렬(猛烈) 여성이 숨어 있었다고 한다.

 

3년을 송흥록과 동거, 뒷바라지 하면서도 송흥록의 피를 토하는 폭포수련을 성공시키기까지는 단 한번도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고 한다. 송홍록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판소리 예맥(藝脈)이 지리산의 지맥(支脈)인 노령산맥을 따라 호남땅으로 번져간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명창으로는 전(前) 8명창, 후(後) 8명창, 또는 5명창을 드는데 순조(純祖)와 철종(哲宗)때 전 8명창 중에서 권삼득(權三得), 모흥갑(牟興甲), 송흥록 형제, 신만엽(申萬葉), 주덕기(朱德基) 등 6명이 호남사람이요, 철종·고종 때 '후 8명창'중에서 박유전(朴裕全), 박만순(朴萬順), 이날치(李捺致) 등도 모두가 호남 태생이었다고 한다. 고종 말기 일제 초기의 '5명창' 김창환(金昌煥), 송만갑(宋萬甲), 정정렬(丁貞烈), 유성준(劉成俊), 진채선(陳彩仙) 등도 거의가 호남 출신이었다고 한다.

 

그후 명창인 허금파(許錦波), 임방울(林芳蔚), 오태석(吳太石), 이화중선(李花中仙) 그리고 무형문화재인 김연수(金演洙), 정광수(丁珖秀), 김여란(金如蘭), 박초월(朴初月), 김소희(金素姬)도 이 호남판소리 예맥에 핀 꽃들이라고 한다.

 

다니엘 부어스틴은 왜 호남이 판소리의 온상이 되었는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들판에는 집회소가 있고 그곳에 사람이 모이면 무대가 생기며 무대가 생기면 예술이 생기고 따라서 들판 사람들은 주정적(主情的)이게 된다"고 했다. 전라도에는 어느 마을이나 마을 입구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모정(茅亭)이라는 조그만 건물이 있다.

 

일을 끝내고 이 모정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여흥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소위 이 '모정'이라는 무대가 바로 '판'이요, 이 '판'에서 여흥으로 나타난 '소리'가 바로 판소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판소리는 당연히 전라도 방언으로 되어 있으며 호남의 고도(古都), 전주가 바로 판소리의 메카가 되어가는 것이다.

 

/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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