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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지절(立冬之節)에

“오, 기억해주기 바라오/ 우리의 행복했던 나날들/ 그 시절 인생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웠고/ 태양은 더 뜨겁게 우리를 비추었다오/ 무수한 고엽이 나뒹글고 있다오/ 추억도 그리움도 그 고엽과 같다는 것을/ 북풍은 그 고엽마저 차거운/ 망각의 밤으로 쓸어가 버린다오…”

 

이브 몽땅의 ‘고엽’(枯葉)이란 노래다. 사랑 이별 인생을 그린 프랑스 시인 프레베르(J. Prevert)의 서정적인 시에 곡을 붙혀 만들었다. 이 노래는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불후의 명곡으로 남아 있다. 깊고 그윽하고 감미로운 분위기는 요즘처럼 깊어가는 늦가을에 딱 어울린다.

 

곱게 물든 형형색색의 단풍은 어느새 낙엽이 되어 길거리에 수북이 쌓여 있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이 마음을 더 서글프게 한다. 차 한잔에 이브 몽땅의 ‘고엽’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이런 감상적인 분위기도 어울리지만 보다 현실적인 치열함이 생각나는 시도 있다. 고 2때 교련 거부로 뭉둥이찜을 당한 뒤 학교를 박차고 나온 논산 출신의 시인 장석주(56)의 ‘입동’(立冬)이 그런 시다.

 

“들판에 서리꽃이 폈다/ 고엽이 죽은 새떼마냥/ 뒹구는 새벽 들판/ 장롱 속 겨울내복 꺼내 입을 때/ 가난한 집 애들 생각을 한다/ 겨우내 맨발로 사는 그집/ 서리들판에서 이삭줍는/ 들쥐네 자식들 발 시리겠다”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 추운 겨울로 접어든 농촌 풍경과 따뜻한 인정을 생각케 하는 시다.

 

오늘(8일)이 입동이다. 겨울의 시작이고 문턱이다.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다 했지만 지나고 보면 화살보다 더 빠른 게 세월이다. 잎이 푸르렀는가 싶더니 단풍이 들고, 단풍이 곱다 싶었는데 어느새 낙엽이 져 겨울채비를 해야 할 때다.

 

어려운 계층의 삶이 걱정이다. 생계를 걱정해야 할 극빈층이 부쩍 늘었다. 비정규직이 600만명을 넘었고 베이비부머들의 은퇴도 본격화하는 시기다. 경쟁 개방의 신자유주의 질서가 가난한 사람의 설 곳을 잃어가게 만든다. 없는 사람의 마음이 더욱 시린 계절이다.

 

낙엽이 뒹그는 을씨년스런 계절에 따뜻한 보살핌이 있어야 겠다. 논어에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라 했다.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공동체적 가치는 송백(松栢)의 가치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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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kjle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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