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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꾼 장금도

작은 키에 곱사등, 큰 얼굴위에 사팔뜨기 눈을 굴리고 손과 발을 뒤틀며 추는 춤. 그 춤을 우리는 병신춤이라 불렀다. 한 많은 생을 풀어내는 듯 한 그의 처절한 몸짓에 관객들은 웃고 울었다. 한 시대, 치열한 춤꾼으로 살았던 병신춤의 명인 공옥진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올해 79세. 지난 9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그는 후유증과 노환으로 긴 투병생활을 해왔다. 그는 70-80년대, 고단한 삶에 지친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힘을 주었던 진정한 예인이었지만 곤궁했던 노년의 삶을 외롭고 쓸쓸하게 보냈다.

 

그를 향한 깊은 애도의 물결을 보면서 우리 지역의 춤꾼 장금도선생을 떠올렸다. 그는 민살풀이 명인이다. 올해 나이 여든 넷. 군산에서 태어난 그는 열두 살 때 권번에 들어가 예기가 됐다. 춤과 소리에 빼어났던 그는 이름이 그 일대에 널리 알려질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김제 같은 인근지역에서 큰 잔치가 벌어지면 어김없이 초청 1순위로 꼽혔을 정도다. 대개 그런 잔치판은 2박3일 동안 이어졌는데, 어떤 잔치판에서는 임방울이 '쑥대머리'를 부르고 그가 민살풀이와 승무를 추기도 했다. 당시 일이 얼마나 많이 밀려들었는지 춤을 추다가 코피를 흘린 적 또한 여러 번이었다고 하니 그 인기세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활동을 했지만 초등학교 다니던 아들이 '춤추는 엄마'를 부끄럽게 여기자 춤을 접었다. 아예 그 시절을 잊으려고 치마저고리 대신 바지만 입고 살았다는 그는 그래서 잊혀진 춤꾼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가 춤 무대에 선 것은 1980년대 이후다. 어머니가 춤추는 것을 싫어했던 아들의 뜻을 저버리기 싫어 무대에 오르는 것을 한사코 거절했지만 세상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의 춤을 알아본 전문가들과 기획자들이 그를 다시 불러냈다. 그가 추는 민살풀이다. 민살풀이는 수건 없이 추는 살풀이춤이다. 그래서 수건 들고는 아예 춤을 추지도 않는다. 그의 춤을 발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순서를 외워서 추는 것이 아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춤, 춤판마다 새로운 것이 솟아나는 춤'에 감동한다. 한 평론가는 '치맛자락을 잡는데 그 맵시가 다 춤이고, 움직임은 꼼꼼한 바느질과 같다며 장단을 따라가는가 싶으면 또 어느 순간 장단을 이끌고 있다'고 극찬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춤을 만나는 일은 이제 어렵다. 마음은 언제나 무대에 있지만 그는 이미 여든을 훌쩍 넘긴 노인이다. 게다가 그의 춤을 제대로 이어받은 제자도 없다. 어느 누구보다도 전통을 오롯이 계승한 춤꾼이지만 무형문화재로도 지정 받지 못한 쓸쓸한 노년의 삶. 그래서 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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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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