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8 23:45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동래부사 송상현의 고향

'외로운 성엔 달무리 지고/여러 진들은 단잠에 빠져있네/임금과 신하 사이는 의리가 지극히 무거워서/부모 은혜 가벼이 하니 헤아려 주소서(孤城月暈 列鎭高枕 君臣義重 父子恩輕)'

 

죽음을 눈앞에 둔 장수의 결기가 담긴 이 글은 동래부사를 지낸 송상현이 쓴 시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이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자 갑옷에 조복(朝服)을 걸치고 객사에 나가 임금에게 마지막 고별인사를 올린 후, 손을 깨물어 혈서로 부채에 이 글을 써서 부모에게 보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충절이, 부모에게는 불효가 되는 갈등 속에서 그가 안아야했을 번민의 고통이 이 짧은 시로 생생하게 전해진다.

 

송상현(宋象賢 1551-1592)은 임진왜란을 겪어낸 충의지사 중에서도 꼽히는 인물이다. 여산 송 씨인 그는 고부(정읍) 천곡 출신. 그의 호 천곡(泉谷)도 고향 지명으로부터 얻었으니 그가 태생지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지역에서 그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고향 어디에도 그를 추모하는 행적이 없으니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송상현을 추모하는 기념비와 사당은 충북 청주에 있다. 성이 함락 당하자 순절한 송상현의 공을 기려 나라가 좌찬성으로 추증하고 청주의 가포곡 땅을 하사해 묘로 쓰게 했기 때문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호남의절록〉이나 〈호남의병사〉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본군이 공격해와 동래성 남문 밖에서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으면 길을 빌려라(戰則戰矣 不戰則假道)"고 하자 그는 "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戰死易 假道難)"며 마지막까지 맞서 싸웠다.

 

사실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약무호남시무국가)'고 했던 이순신의 말은 단순한 의례적 말이 아니다. 식량보급기지이자 의병들의 활약상이 뛰어났던 전라도는 임진왜란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다. 임란 당시 나라를 위해 싸우며 목숨을 바친 인물 중 유난히 호남출신이 많은 것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는 임진왜란 7주갑(420년)이다. 이를 기념해 전주역사박물관이 귀한 전시를 마련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를 좀 더 새롭고 의미 있게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자리다.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을 과거로부터 오늘로 옮겨온 전시실에서 관객들은 동래부사 송상현을 비롯한 전북출신 충절지사들을 만날 수 있다. 임란기의 생활상을 일기로 담은 〈쇄미록〉과 〈임진록〉 〈호남절의록〉과 같은 귀한 유물과 기록들이 주는 역사적 교훈도 크다. 돌아보고 나면 전북에 살고 있는 자긍심이 더 커지게 되니 청소년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교육현장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은정 kimej@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