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모음책에 글을 쓴 임교수는 자신의 집에 모신 후에서야 보호자가 없이는 어느 것 한 가지도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누나의 행복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권한 것이 그림그리기다. 할머니는 동생이 사다준 도화지에 크레용으로 색연필로 때로는 스티커로 날마다 그림을 그리고 붙이기 시작했다. 임교수의 집 벽면은 이 그림들로 가득 찼다. 관객은 임교수 부부와 도우미 아주머니 단 세 명. 새로 그린 그림을 보면 칭찬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관객들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관객은 할머니 자신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할머니는 즐거워했다. 가족들은 작은 보살핌과 칭찬이 할머니의 일상에 얼마나 큰 희망이 되는지를 알게 됐다. 낙서 같았던 그림은 시간이 지나면서 날로 새로워졌다. 사람과 동물, 과일, 나무, 어린 시절에 본 허수아비와 막대총까지 그의 기억은 모두 도화지위에 옮겨졌다. 한 평생 외롭게 집안에서만 살아야 했던 정박아 할머니는 그렇게 화가가 되었다.
지난 1월 4일, 할머니는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임교수의 말처럼 반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그렸다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연상시키는 이 그림은 새와 나무, 풀밭과 강물이 흐르는 풍경화다. 검은 하늘에 점토를 붙여 두 개의 달까지 그려 넣은 그림을 임교수는 누나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식탁 옆 벽에 붙여 놓았다. 그림 모음책에서 '우리누나가 그린 경치'란 제목으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그림이다. 할머니는 이 그림을 그린 이틀 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영혼의 풍요로움이 가득찬 그림들은 세상에 남았다. 정신지체장애로 온 생애를 외롭게 살았던 할머니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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