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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기억'

흑백 사진 한 장. 저고리 고름이 찢겨 드러난 젖가슴을 가리는 일도 잊은 엄마와 맑은 눈망울의 아이가 거기 있다. 시간을 거슬러 만난 사고 현장은 참혹하다. 1966년 6월 6일 진안에서 전주를 잇는 곰티재에서 버스가 추락한 직후의 광경이다. 버스는 71명이나 되는 승객을 싣고 달리다 1백 미터가 넘는 골짜기에 추락했다. 15명이 사망하고 54명이 부상당했으며 버스는 산산 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1977년 11월 11일 한 도시의 운명을 바꾼 이리역 폭발사고. 최악의 참사였던 이 폭발사고로 59명이 사망했으며 1158명이 부상을 당했고 1647세대 7800명이 집을 잃었다.

 

도로 한복판에서 쫓기고 쫓는 자. 쫓기는 사람은 학생이고, 쫓는 사람은 전투경찰이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만난 현장은 숨가쁘다. 1980년 민주화 투쟁의 치열한 시위현장, 계엄령이 내려진 엄혹한 시대상황에서도 두려움에 떨지 않고 나섰던 청년들의 함성이 거기 있다.

 

오늘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90년대 초입에도 슬픈 기억이 있다. 1993년 10월 10일,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안 위도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오열하는 유족들의 통곡이 서럽다.

 

1950년 전쟁의 포화 속에서 창간한 전북일보가 최근에 펴낸 사진집 '기억'의 장면들이다. 1950년대부터 2009년을 잇는 60년 현대사에 놓인 풍경들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기억을 깨운다. 한국전쟁의 포연이 가시지 않은 50년대, 궁핍했던 60년대, 산업화에 눈떴던 70년대, 민주항쟁의 80년대, 변방으로 밀려난 90년대, 가능성과 희망의 2000년대까지 전북의 기억은 영욕의 궤적위에 고스란히 놓여있다.

 

잊고 싶거나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되살리는 사진의 힘은 크다. 사진가 정주하교수는 '사진은 자화(自話)하는 역사'라고 말한다. 무엇을 표현하든 우리에게 사실로서 각인되며 그 자체로써 역사를 담보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정교수의 말처럼 사진은 현재와 과거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며 결코, 우리의 삶에서 유리된 적이 없다.

 

전북의 현대사 60년을 촘촘히 꿰어놓은 400여장의 사진 역시 역사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역사는 기록으로 말한다. 아무리 자랑스러운 역사라하더라도 기록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정당한 역사로 서지 못한다. 사진으로 남은 '기억'이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전북의 역사'여야 하는 이유 또한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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