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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역과 춘포역

2004년 7월 15일 전라선 개량화 2단계사업이 마무리 되면서 문을 닫아야 했던 오수역의 마지막을 취재한 적이 있다. 오수역 폐쇄는 전라선에 합류해있던 역사 중 마지막 이주였다. 당시 오수역은 면단위 역 중에서는 그나마 과거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었던 몇 남지 않은 역중의 하나였다. 오수역의 과거는 화려하다. 교통의 중심 거점 역할을 했던 오수의 지리적 여건 덕분이다. 오수역은 고려 이래 전북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고려는 전국에 걸쳐 역로를 22도(지금의 선)로 나누고 그 밑에 5백 25개의 역을 두었는데, 전라도권의 4개 도 중 하나이자 12개 역을 관할하는 남원도의 중심역이 바로 오수역이었다. 조선 후기까지도 오수역은 전라도 안에서 경양역 다음으로 규모가 컸다.

 

역은 추억의 상징이다. 그 역이 시골의 낡은 역사라면 낭만과 서정은 더 깊어진다. 지금은 없어진 풍경이지만 시골의 낡은 역사에 기차는 이별하거나 만나는 순간을 내려놓고 떠났다. 역은 고향을 떠나려 서성이는 사람들을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출구였으며,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는 통로였다. 그러나 오늘날 화려하게 변신한 역들에서 그러한 추억을 돌이키는 일은 어렵다. 아름다웠던 낡은 역사는 폐쇄됐으며 대부분의 역사는 새집을 얻어 옮겨갔다.

 

공식적인 기록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차역인 춘포역(1914년)을 역사 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키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간이역인 춘포역은 지난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승객이 줄어들면서 무인역이 된지는 이미 오래, 운영난을 이기지 못한 전국의 수많은 간이역들이 그랬듯이 춘포역도 지난 2011년 5월에 폐쇄됐다. 춘포역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는 특별하다. 간이역은 낭만과 서정, 추억의 상징이지만 그 역사를 들여다보면 한반도가 겪어야 했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철도가 일제강점기 수탈의 통로였다면 간이역은 그 전초기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간이역'을 펴낸 건축비평가 임석재교수는 간이역을 새로운 관점으로 볼 것을 주문한다. 임교수는 "아픈 역사를 배우고 그 아픔에 동의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의외로 즐김이 유용할 수 있다. 즐기고 놀되 역사를 반추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다음에 느끼는 서정성은 한층 단단하고 성숙한 것이 된다"고 말한다. 춘포역을 문화공간으로 재생하는 작업에 꼭 담아둬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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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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