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8 17:39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토착 비리

"한 고을을 장악해 일 만들기 좋아하는 무리들이 시도 때도 없이 유향소(留鄕所)에 모여 수령을 헐뜯어 내쫓고, 백성을 괴롭히는 것이 교활한 아전보다 심하니 이를 모두 혁파해야 합니다." 이른바 지방 토호(土豪)들의 폐해가 조선시대에도 심했던 모양이다. 태종 때 대사헌 허응은 토호를 지방정책 수립의 걸림돌이 되는 적대적 세력으로 보고 시무칠조(時務七條)에서 혁파를 호소했다.

 

다산 정약용도 "토호의 무단적인 행위는 일반 백성들에게는 승냥이나 호랑이처럼 무섭다(土豪武斷 小民之豺虎也)"고 비판했다. 토호세력의 피해를 없애고 백성을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목민관의 책무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목민관이 선출직으로 바뀌면서 지방 토호세력과의 유착이 더욱 큰 문제가 돼버렸다. 토호들은 자치단체의 인사, 공사입찰, 자재납품 등의 비리를 저지르고 말을 듣지 않으면 악소문을 퍼뜨린다. 임실군수 사건이나 5적(敵) 운운 하는 사례들이 대표적이고 관변단체 기관장과 권력화된 일부 생활체육동호인, 지방의원들이 입줄에 오르내린다. 단체장과 토호세력 간 역학관계를 잘 알기 때문에 공직자들도 알아서 긴다.

 

얼마전 감사원이 전국의 토착비리 70건을 적발했다.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공무원들의 엉터리 일처리가 많다. 전북지역에선 전주·군산·부안·고창군 공무원들이 적발됐다.

 

정권이 바뀌면 맨 먼저 잡들이 하는 게 토착비리다. 감사원은 '자치단체 내에서 지방공직자와 토착세력(지역업체, 토호세력)이 유착하고 결탁해 이뤄지는 부정비리'를 토착비리로 정의하고 있다. 토착비리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 청와대 민정수석을 단장으로 하는 특별사정반이 '지방 토착비리'에 대한 감찰을 실시하면서 부터다. 이때 350건의 지방유지 및 지방공직 비리가 적발됐다.

 

토착비리는 근절돼야 마땅하다. 공무원의 이익추구, 공무원과 토착세력 간 유착, 단체장의 재량권 남용, 공무원들의 단체장에 대한 맹종, 투명하지 못한 행정행위 등이 비리를 부추기는 요인들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칼날을 지방에 들이대는 건 문제다. 지방이 마치 비리 온상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 일회성 단속보다는 비리 가능성을 줄일 제도개선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경재 kjlee@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