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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대중화

2003년 쯤 이었던 것 같다. 매주 토요일 오후, 전주 덕진공원에서는 소리판이 열렸다. 돗자리 한 장, 북과 북채가 전부인 이 즉석 소리판의 시작은 소박했지만 그 끝은 언제나 화려했다. 공원에 나들이 왔던 관객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면 절로 객석이 만들어지고, 금세 신명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이 공연이 언제까지 계속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고정 관객들까지 생겼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변변한 홍보물 하나 없이도 소리꾼과 관중이 자연스럽게 만나 흥을 나누는 즉석 소리판을 만든 사람은 김연 명창이었다. 판소리 공연이 활발해졌다고는 하지만 덕진공원 '즉석 소리판'처럼 소리꾼과 청중이 우연히 만나 신명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더구나 명창의 반열에 오른 소리꾼이라면 공연 여건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공간에서 소리로 청중들을 불러들이는 일에 나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일. 그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터다.

 

그즈음 전주에는 매주 정기적으로 판소리 공연이 열리는 공간이 있었다. 지금은 전주전통문화관으로 이름을 바꾼 전통문화센터가 여러 해 동안 운영했던 '해설 있는 판소리'다. 이 판소리 감상회 대부분도 객석이 차고 넘쳤다. 어느 때인가는 '해설 있는 판소리'가 '영문 자막이 있는 판소리 시연회 및 공개 토론회'로 바뀌어 열렸는데, 그때도 경업당 30여 평 객석은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찼다. 온몸으로 이뤄내는 '소리예술' 판소리가 대중들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사실 모든 장르의 문화가 혼재된 문화충돌의 시대에서 우리 음악의 자리 잡기는 그만큼 치열한 과정을 요구한다. 판소리 역시 대중화를 위한 '실천'이 치열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게 된다. 지난 주말부터 전주한옥마을 소리문화관에서는 마당창극 '천하맹인 눈을 뜬다'상설공연이 시작됐다. 관광객을 위한 상품답게 객석은 차고 넘쳤다. 그쯤 되면 판소리 대중화의 몫도 기대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의 판소리 대중화 작업이 지나치게 외형적은 아닌가 싶다. 전통 판소리 공연을 외면한 채 화려한 엔터테인먼트의 힘에만 의존한 대중화는 그 본류를 빗겨가기 십상이다. '해설 있는 판소리'와 같은 상설 공연의 맥조차 지키지 못하는 오늘의 환경에서는 그 우려가 더 깊어진다. 그래서다. 전주가 언제까지, 무엇으로 판소리의 고장일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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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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