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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과 상상력의 만남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시인은 시만 가지고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다. 살림살이 자체가 시인 악양 박남준 시인의 낭만적 청빈이야 더 말할 것이 없는 일이고 절필까지 선언하며 시대와 맞장 뜨겠다는 안도현 시인의 결기 뒤에 숨어 있는 수많은 '발견'의 일깨움!(확인하고 싶으면 매주 토요일에 진행되는 '사제와 시인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순례길 걷기'에 참여해 보시라! 끝없이 이어지는 꽃과 나무와 풀들에 관한 이야기로 발걸음이 지칠 틈이 없다!), 김용택 시인의 뜬금없는 발언이 주는 돌연한 깨우침까지!

 

지난 주말 전북작가회의 여름수련회에서도 김용택 시인은 예상 밖의 증언으로 진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처음 자신의 시작품에 관한 얘기는 횡설수설까지는 아니래도 끝맺음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는데, '시 말고 삶에 대해 말해보자! 시도 삶의 얘기니까!' 하며 꺼내든 어머니 얘기는 장내를 일거에 숙연하게 만들었다.

 

팔순을 한참 넘긴 시인의 어머니는 노인요양병원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겨우 연명 수준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시인 부부는 이런 모습이 안타까워 계속 고민을 해왔던 것! 그러다가 평생 잘해오던 일이라면 지금 상황에서도 잘해나가리라는 생각에 천 조각과 실 바늘을 마련해 드렸다. 예상 적중! 약간의 치매 기운마저 있는 이 노인 양반의 삶은 그날부터 천지개벽, 다시 젊은 날의 능동적 삶을 회복했다. 이제는 그 병원의 모든 바느질거리를 도맡아 처리하며 천 조각을 이어 만든 식탁보 등은 내다 팔 수도 있는 수준! 급기야 별도의 작업공간까지 마련하게 되었으니 연명의 세월이 하루아침에 당당한 공예인의 창작활동으로 거듭난 것이다!

 

또 하나 시인 부부가 착안한 것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자는 것! 복잡하고 새로운 것은 오히려 부담,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어요?" "우리집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올라요?" 등을 화두처럼 던지고 다음 만남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재미난 것은 그 답이 자주 변한다는 것. "애비가 교사 발령을 받았을 때!" "손주가 태어났을 때!" 등등. 이는 계속 생각을 한다는 것의 반증! 이는 치매의 진전을 막아줄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자연스럽게 정리해주는 이중 삼중의 효과가 있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이 시인 부부의 지극한 효성과 놀라운 상상력이 있어 가능한 일, 상상력도 없고 효성도 부족한 나 같은 범부는 이 감동의 깨우침을 받고도 실현할 길이 없으니 이를 설워하노라!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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