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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그리운 계절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우리는 종종 일탈을 꿈꾼다. 때로는 실제 벗어나 보기도 한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다. 벗어나지 않고는 돌아올 수 없다. 돌아온 탕아가 그러하듯 틀에 박힌 일상을 벗어던져 보아야만 새롭게 거듭난 모습으로 일상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진부함에 함몰되기 십상이다.

 

시인과 예술가들에게는 상상력이라는 놀라운 일탈의 날개가 있다. 누워서도 푸른 바다 그 깊은 곳을 항해할 수 있다. 골방에 앉아 우주 저편의 속삭임도 들을 수 있다. 천재들은 흔들리지 않고도 넘친다. 넘쳐흐름으로써 온 강과 들녘의 온갖 푸르른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우리들 범인들이 항아리에 갇힌 물처럼 그 좁고 퀴퀴한 공간을 온 세상으로 착각하고 있는 동안.

 

그런 비상의 날개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설사 주어진다 해도 쉽게 펼치질 못한다. 일상 규범의 부릅뜬 눈 때문이다. "습관이 서리만큼 무거운 추로 내리누르고"(워즈워스) "세월이라는 무거운 짐이 기를 꺾고 구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의 가시밭에 쓰러져 피를 흘리노라!"(셸리) 절규하는 것이다.

 

상상력이나 천재성을 부여받지 못한 중생은 다른 힘을 빌지 않고는 흔들릴 수도 넘쳐흐를 수도 없다. 그래서 술의 도움이 필요하다. 벗어나기 위해. 크게 한번 흔들려보기 위해.

 

술은 바람이다. 상상력이 영감의 바람이듯, 그것은 일상의 진부함을 털어버리게 해주는 혁신의 바람이다. 막걸리가 이른 봄 수액이 잘 오를 수 있도록 나무줄기와 가지들을 흔들어주는 바람이라면, 소주는 썩은 가지들을 부러뜨리고 부실한 열매들을 털어내 남은 것들을 실하게 해주는 태풍이다.

 

취직과 돈벌이의 일상에 쫓기다 "우리 민주주의가 초기화된 컴퓨터"(한승헌)처럼 되어 버린 요즘같이 술의 "혁명적 타격"(고은)이 절실한 적도 없다. 습관의 노예가 되어 수십 년간 쌓아온 민주화의 자료들 그 소중한 유산마저 날리고 말았다. 이기심에 사로잡혀 일탈의 소통을 게을리 하다가 민주공동체의 터전마저 빼앗기고 만 것이다.

 

털어내야 한다. 저 진부한 유신의 썩은 가지들! 걷어내야 한다. 푸른 하늘 덮은 "먹구름과 쇠항아리"! 술의 상상력 힘 빌어 "껍데기"에 가려진 "4월"의 "알맹이"(신동엽) 되살려야 한다. '긴 밤 지새우는' 디오니소스적 열정 되찾아 다시 '아침 이슬'의 상쾌한 향 맛볼 수 있어야 한다.

 

이래저래 참 술 고픈 계절이다. 진실로 술친구 그리운 계절이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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