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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거리와 삶의 거리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차를 탈 때와 걸어 다닐 때의 마음가짐이 너무 다르다. 차 안에서는 경적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행인들의 모습이 짜증스럽다. 걸을 때는 혼자만 바쁜 양 빵빵거리는 운전자들의 작태가 얄밉다. 교양 없는 ‘반문화인’으로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 기준이 전혀 다르다.

 

가을 거리의 노란 은행잎은 황량한 도회지의 삶을 푸근하게 감싸주어 좋다. 그런데 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거리의 청소부들! 그들에게는 끈질기게 붙어 있다가 조금씩 떨어지는 나뭇잎이 성가신 골칫거리일 뿐이다. 그래서 낙엽만 쓸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비를 들어 나무를 후려친다. 가로수를 상록수로 바꿀 수 없다면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이들에게는 반가운 일일 것이다.

 

방학을 맞은 대학교정이 참 한가롭다. 드문드문 눈에 띄는 학생들의 발걸음에도 모처럼 여유가 있어 보인다. 교정이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는 모습은 이런 분위기에 또 다른 정취를 더해준다. 어려서는 지천으로 볼 수 있었는데 요즘 들어 ‘온실효과’ 때문인지 자주 볼 수 없게 되어 더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귀한 눈을 반겨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교정 관리의 책임을 지고 있는 수위 아저씨들! 관상목을 소담스레 덮고 있는 눈을 무지막지하게 털어 내곤 한다. 눈의 무게로 나무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이로 인해 질책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눈은 귀찮은 짐일 뿐이다.

 

각박한 도회지의 삶에 찌든 사람들에게 농촌의 한가로운 모습은 여유를 주어 좋다. 딱딱한 시멘트나 아스팔트에 물린 이들에게 흙 길은 정겹기 그지없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비만 조금 와도 질척거리는 흙 길이 싫다. 성냥갑같은 빌딩들만을 바라보던 도회지 사람들에게 완만한 곡선의 초가지붕은 어머니의 품안처럼 포근하다. 그러나 짚을 구하기도 어렵고 매년 지붕을 이는 데 품을 팔 여유가 없는 농부들은 진즉 초가지붕 걷어내고 지붕개량(?)을 해버렸다. 모처럼 그 포근한 분위기에 젖어보려던 도시의 ‘구경꾼’들을 실망시킨 지 오래다.

 

무지막지하게 가로수를 후려치고 눈을 털어내는 것을 반문화적라 탓할 수 있는가? 시멘트로 골목길은 물론 집마당까지 덮어버린 것을 몰취미라 욕할 수 있는가? 구경꾼의 시각과 일(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의 입장이 얼마나 다른가? 그렇다면 과연 문화란 무엇인가? ‘구경거리’인가 아니면 ‘삶(살아가는 것)’과 연관된 무엇인가? 새삼 되뇌게 하는 아침이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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