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 객원논설위원
“모르겠어!”
12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스콜라철학자 아벨라르(Pierre Abelard, 1079 -1142)의 마지막 말이다. 수년 동안 철학을 연구하고 가르쳐 온 그는 파리대학교 설립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독특한 가르침 방법은 소크라테스처럼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의 이런 회의적 태도는 당시 기독교계의 반감을 샀으며 그의 생애 대부분 동안 그의 저술은 금기시되었다.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 입장에서 보면 논리를 앞세운 이런 유보적 문제제기가 큰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이 마지막 말도 그의 이런 태도를 뭉뚱그려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엘로이즈(Heloise)와의 비극적인 연애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엘로이즈는 미모와 학식을 겸비한 당시 대표적인 지적 여성으로 그를 흠모하던 제자였다. 둘은 서로 사랑에 빠져 아들까지 낳게 된다. 그런데 아벨라르의 출세에 걸림돌이 될 것을 염려한 그녀가 자신이 공부하던 수녀원으로 돌아간 것이 오히려 비극의 싹이 된다. 그녀의 숙부는 아벨라르가 엘로이즈를 버린 것으로 여겨 복수를 결심하게 되고 급기야 사람들을 동원 그의 성기를 잘라버린다.
그 후 그는 수도승이 되고 그녀 또한 수녀가 된다. 아벨라르가 쓴 <나의 불행한 이야기> 가 계기가 되어 주고받기 시작한 라틴어 연애편지는 나중에 불어로 번역되어 많은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 된다. 영국의 시인 포프(Alexander Pope, 1688-1744)도 <엘로이자가 아벨라르에게(eloisa to abelard)> 라는 격정적인 서간체 낭만연애시를 남기는데 이 또한 이 편지를 소재로 한 것이다. 균형과 절제를 미덕으로 여기던 신고전주의 시인이 격정의 사랑시를 남긴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다. 그만큼 두 지성인들의 뜨거운 비극적 사랑에 감동을 받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엘로이자가> 나의>
‘모르겠어!“ 공부하는 사람, 자기발전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끊임없이 되뇌어야 할 말이 아닌가 한다. 지적 오만이야말로 성장을 방해하는 가장 난감한 훼방꾼이다. 요즘과 같은 자기홍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화두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겸손한 태도가 오히려 자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안일 수 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짧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뜨거운 사랑과 그로 인한 고통까지 몸소 체험한 ‘중세 최대 연애사건’의 주인공이기에 더욱 더.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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