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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의 꿈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완전을 꿈꾸던 땅 전주를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 만들어 가자고 많은 이들이 손을 잡던 시절, 그 핵심가치인 전주정신에 관한 논쟁이 말 그대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이었다. 그 중에는 이것을 전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과 연결하여 살핀 이도 있다.

 

예를 들어 전주비빔밥. 비빔밥은 간편식이다. 그러나 온전함을 추구하는 땅에서는 그렇지 않다. 적어도 그 조리과정에서는 간편성을 내세운 ‘대충’이 통하지 않는다. 철분이 풍부한 전주콩나물 등 재료의 선택에서도 ‘완전’을 향한 정성은 확인된다. 밥도 그냥 물이 아니라 사골국물로 짓는다. 나물 또한 각각의 특성을 살려 따로 조리하며 그것을 배치하는 데에도 색상을 고려한다. 빨간 고추장에 계란 노른자를 올려놓는 데서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숙연함마저 느끼게 한다.

 

차마 대충하지 못하는 진정성은 세계의 보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판소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동체적 삶의 한과 신명을 고도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이 인류 최고의 소리음악 자체에, 이미 삶의 질곡 속에서 접하게 되는 슬픔을 차마 분노나 절망으로 내몰 수 없다는 불인지심(不忍之心)이 녹아 있다. 그런데 이 소리마저 이곳에서는 함부로 자랑삼지 못한다. 대충을 용납하지 않는 귀명창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김새’와 ‘그늘’ 등 판소리 미학의 핵심을 이곳 사람들처럼 철저하게 요구하는 곳도 없다.

 

한옥마을이야말로 이런 진정성이 가장 밀도 있게 집적되어 있는 곳. 전란의 간난신고 속에서도 차마 태조어진과 왕조실록을 방치할 수 없었던, 그리하여 조선의 역사를 오롯이 지켜낸 선비들의 기개가 서려있는 경기전. 차마 진정어린 신앙을 부인하지 못해 순교한 이들의 치명 순정이 처연한 건축미학으로 거듭난 전동성당. 차마 편리함을 앞세워 아파트로 피해갈 수 없었던 이들의 근기가 어려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한옥군. 이곳에는 실용을 핑계로 차마 예술 공예를 버릴 수 없어 가난을 군자의 고궁(固窮) 쯤으로 여기며 목쇠고 눈 무르는 것 마다하지 않고 세월을 버텨온 장인들의 진한 땀 냄새가 배어 있다. 완전을 꿈꾸며 느리게 익어가는 이곳은, 그래서 급하게 먹거리나 찾아다니는 사람 반기지 않았다.

 

그런 꿈같은 시절이 있었다. “꿈은 사라지고 바람에 날리는 낙엽….” 음식난장으로 변해가는 한옥마을을 거닐면 저절로 입에 오르는 철지난 유행가. 꿈이었나? 정녕 꿈일 수밖에 없는 일인가?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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