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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지물 백서(白書)

 

백서(白書)는 행정 부처가 각 분야에 대한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한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는 보고서다. 서해훼리호나 대구지하철 참사, 천안함 폭침 같은 백서는 사고 재발을 예방하고 수습과정에서 시행착오를 막자는 뜻에서 발간된다. 사고 원인과 대응 및 수습, 뒤처리까지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나자 정부는 1993년 발생한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백서를 참고하려 했지만 한동안 백서를 찾지 못했다. 백서를 펴낸 전북도 역시 백서를 찾아내는 데 이틀이나 걸렸다고 한다. 백서를 거들떠 보지 않거나 어디에 쳐박혀 있는지조차 모른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백서를 꺼내 들여다 보았다. 인천 해난심판원은 사고 원인을 세가지로 분석했다. 기상을 무시한 출항, 운항 미숙, 무리한 기기조작과 과적 과승이 그것이다. 서해훼리호는 돌풍이 예상된다는 예보 때문에 출발 하느냐 마느냐로 한동안 머뭇거리다 예정시간을 40분 넘긴 뒤 출항을 강행했다. 141명이나 초과 승선(정원 221명)한 상태에서 40도 가량 변침하면서 복원력을 상실해 전복됐다.

 

세월호 침몰 원인도 서해훼리호와 판박이다. 과거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오늘의 안일이 302명(사망·실종)의 인명을 앗아갔다. 하지만 팬티 바람으로 세월호 조타실을 맨 먼저 빠져나간 선장 이준석(69), 서해훼리호와 운명을 같이 한 선장 백운두(당시 59세)의 ‘인간 차이’는 너무 크다.

 

서해훼리호 사고는 단 한구의 사체까지도 유실되지 않고 찾아냄으로써 해난사고 사상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조류에 떠밀려 멀게는 24㎞ 해상까지 표류한 사체도 있었다. 마지막 사체 1구를 찾지 못해 현상금 500만원이 내걸렸다. 그 사체 1구도 사고발생 23일만에 위도와 임수도 중간 지점에서 발견됐다. 세월호 실종자 수습이 더디다. 선체 인양까지는 한달 반이나 걸릴 것이라고 한다. 살아만 있어 달라는 실낱 같은 소망도 점차 스러져 가고 있다.

 

백서는 세월호 사고에서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했다. 문제점과 대책을 실행하지 않은 탓이다. 이런 태도라면 백서를 백번 만들면 뭐하나. 종이 값이 아깝다. 사고 나면 책임자 갈아치우고 재난시설 점검 호들갑 떨면 끝이다. ‘지금껏 늘 그래왔어’라는 관행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사고는 계속될 것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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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kjle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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