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완주 비봉의 난곡마을에 정말 작은 음악회가 마련되었다. 세월호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요즘 아무리 특별한 날이라도 차마 어떤 행사를 기획할 수 없다. 그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노무현대통령 서거일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자칫 고인을 욕 뵐 수도 있는 참으로 엄혹한 시절. 그러나 그 둘을 겸할 수 있다면?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상황이 흡사하니 잘만 엮으면 의미있는 행사가 되지 않을까?
음악회는 그런 취지로 마련되었다. 억울한 죽음 잊지 않겠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젖어있지만 않고 잘못을 바로잡기위해 나서겠다,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겸한 추모의 장으로 꾸려진 것이다. ‘지리산 흙피리 소년’(청년) 한태주군 부자의 오카리나와 기타 연주, 도립 위은영 수석의 거문고 산조, 청아한 대금 반주를 곁들인 박영순 명창의 판소리 춘향가 한 대목도 그런 취지로 마련된 것.
오래 참지 못하는 어린이들의 방해로 처음 분위기가 어수선했지만 마을 어른들은 물론 멀리에서 찾아온 손님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봄밤의 신명은 깊어만 갔다. 잠시 주인장이 마련한 풍성한 음식(너무 다양하게 장만하여 오히려 흠이 될 수도 있는)으로 허기를 달래고 바로 2부 순서로 넘어갔는데 음식과 함께 나눈 술로 인해 분위기는 훨씬 무르익어 갔을 것이다.
처음 문을 연 도립 박상후의 대금산조는 다시 숙연한 분위기를 되살려 주었으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선곡했다는 소리꾼 이용선의 국악가요 ‘쑥대머리’와 ‘하얀 나비’(김정호 곡 노래)의 가사는 숨죽여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이어지는 소프라노 고은영의 ‘청산에 살리라’. 이 노래는 노무현대통령 퇴임행사에서 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 반주로 고은영씨가 불렀던 것. 앵콜 곡 「넬라판타지」를 마지막으로 시골 작은 음악회는 마무리되었다.
애이불비(哀而不悲), 슬퍼하되 비탄에 잠기지는 않는, 딱 그런 정도의 추모음악회!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뒷풀이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재능나눔으로 참여한 연주자들이 손수 음식상까지 치우고 다시 방안에 차린 조촐한 술자리. 명분은 연주자들을 위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다시 그들의 재능기부를 강요하는. 그 곳에 이 음악회의 백미요 절정이 있었다. 이용선 명창의 판소리 ‘쑥대머리’와 고은영 소프라노의 ‘고엽’ 등! 그냥 탄식의 환호만이 이어졌다. 그렇게 오지(奧地) 시골의 작은 음악회는 큰 울림으로 오지게 마감되었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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