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있다면 어렵게 마련된 전주전통문화정책의 터전이 차후 크게 흔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다시 또 경제나 개발의 논리에 휘둘리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전통문화의 상품으로서의 가치만 따지지 말고 그 근본정신, 느리고 더디지만 자연과 생태를 함께 생각하는, 대안적 삶의 모색과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조급하게 가시적 성과에 매몰되어 ‘전주다움’을 잃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 미래 천년을 열다〉, 2007년 발간된 전주전통문화주심도시추진단 백서의 머리말에 실려 있는 염려의 말. 추진단이 한옥마을에 둥지를 튼 게 2004년 7월, 그 후로 꼭 10년이 지났는데 걱정했던 일이 꼭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전통문화정책이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 한옥마을에도 문화나 전통은 찾아보기 힘들고 관광을 빙자한 장삿속만 넘쳐난다. 시에서 어렵게 마련한 문화시설들도 높은 임대료 압박에 전통문화를 챙길 여유가 없다. 한옥마을을 한옥마을답게 해주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예술공예인들 또한 턱없이 높아진 전·월세에 밀려 떠나간지 오래다. 전통찻집은 카페로, 공방은 음식점으로 바뀌고 아이스크림과 초코파이 족들만 득실거린다. 슬로시티에 가입까지 해놓고 그 취지에 어긋나는 길로 서슴없이 나서고 있다.
안타까운 건 잃어버린 게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추진단의 가장 큰 성취는 민관협치(governance)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것. 그러나 그 아름다운 전통은 추진단의 해체와 더불어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다. 공무원조직의 잦은 교체는 불가피한 일, 정책추진의 일관성을 견지해줄 전문가 집단마저 소외되면서 전통문화정책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앙정부와 연결고리가 약해진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추진단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당시만 해도 전주를 좋아하는 문화관광부 국장 과장이 많았다. 자체 워크숍 장소로 전주를 택했을 뿐만 아니라 시험적으로 하고 싶은 시범사업들도 자주 전주에 의뢰했었다. 상하가 분명한 공무원조직에서 상위부서와 소통하는 일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고위공무원이라도 당당하게 만날 수 있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를 위한 노둣돌이었던 추진단 창단 10주년, 다시 한 번 전주를 한국전통문화의 중심으로 세우기 위한 심기일전의 정책적 배려, 민선 6기를 맞이하며 기대해 본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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