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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과하주'

   
 

술의 역사는 깊다. 나라마다 그 역사를 담아내는 대표적인 전통주가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국적으로도 이름난 전통술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통술의 자리를 맥주나 소주, 양주나 와인이 차지하고 있는 동안 전통주는 멸실되었거나 그 맥이 단절되어버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일상에서 전통주가 복원되고 있다. 집안 대물림 되어 오던 가양주의 부활은 특히 반갑다.

 

전주에는 알게 모르게 입소문난 가양주가 있다. 권오표 시인의 ‘과하주’다. 시인의 술담기는 20년 가까운 경력을 갖고 있다. 워낙 나누어마시기를 즐기는 덕분에 시인의 과하주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10년 전 쯤에는 전주술박물관에서 시연회를 갖기도 했다.

 

과하주(過夏酒)는 여름을 건강하게 넘기는 술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시인은 어머니로부터 과하주 기법을 물려받았다. 손맛이 특별히 빼어나셨던 시인의 어머니는 해마다 솜씨있게 술을 빚어냈다. 그러나 시인의 아버지는 술을 즐기지 않았다. 그 덕분에 맛좋은 과하주는 많은 지인들에게 안겨 즐거움을 주었다. 시인 또한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과하주를 어쩌다 맛 본 지인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때가 되면 ‘과하주 맛보기’ 를 원하는 일이 잦아지자 과하주를 스스로 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깨너머로 배운대로 하면 될 듯 싶었지만 어머니의 감수 없이는 쌀과 누룩의 양을 맞추는 일조차도 쉽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가 작고하신 첫 해에 혼자 힘으로 담았던 과하주는 ‘실패’였다. 시인 부부가 정성으로 키운 매화 꽃봉오리가 터지는 시기에 맞추어 시작됐던 ‘과하주 한잔’의 연례행사는 그해 깨끗이 중단됐다. 그때 담았던 술의 양과 그 술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아직도 비밀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부터 실패는 없었다. 그가 터득한 것은 가양주의 비법이 따로 없다는 것. ‘기다림과 정성’에 답이 있었다.

 

시인의 술담기는 대략 10월 하순경. 분량도 입소문에 따라 점점 늘어났다. ‘권시인표 과하주’는 특히 문인들 사이에서 인기인데 전북지역은 물론 다른 지역의 적지 않은 문인들이 해마다 그의 과하주를 기다린다.

 

술을 담기 시작하면서 그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고 한다. 술을 나누면서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기쁨 또한 커졌다. 시인은 “정작 그 행복을 온전히 갖게 되는 것은 바로 나”라고 말한다. 여름의 한중간, 아직 시인의 ‘과하주 한잔’ 소식은 없다. 생각해보니 몇 해 거른 것 같다. 나누는 기쁨에 동행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탓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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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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