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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불급(不狂不及)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미치지(狂) 않으면 미치지(及) 못한다! 세상에 의미 있는 일치고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학문이나 예술은 물론 사랑까지도 온전히 자신을 잊는 오랜 몰두가 있어야만 빛나는 성취로 이어질 수 있다. 황동규 시인은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광기의 열정과 헌신이 전제되어야만 우연에 기대는 것도 가능하다.

 

이 ‘미치광이들’에게는 아무리 어려운 현실적 조건이라도 장애가 될 수 없다.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좌절과 절망을 불러일으킬 여건이 이들에게는 오히려 분발을 촉구하는 자극제일 뿐이다. 밀턴은 시력을 잃고도 <실낙원> , <복낙원> 등 위대한 서사시를 썼으며 베토벤은 청력을 상실하고도 합창 교향곡, 장엄미사, 후기 현악사중주 등 ‘인류 최고의 유산’을 남겼다.

 

상업화, 산업화에 저항하며 독특한 환상의 세계를 시와 그림으로 그려낸 영국 최고의 낭만시인 블레이크는 아예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다. 산으로 부식해 그린 동판에 직접 채색을 하여 오랜 공정을 거쳐 어렵게 찍어낸 그의 시그림은 그 내용도 혁명적이지만 그 생산방식도 광적인 열정의 몰입 없이는 불가능한 영역의 것이다.

 

이들에게 현실에의 순응은 죽음일 뿐이다. 습관, 인습에 젖는 것은 진부함(cliche)을 용납하는 것이요, 이런 상투성이야말로 예술 생명의 포기에 다름 아니다. 하여 이들은 항상 우리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이방인이요 아웃사이더다. 버림받아 외롭고 고독하고 가난한 이들은 때로 ‘저주받은 존재’, ‘추락한 천사’로 불리기도 한다. 길에서 죽은 포우나 그를 떠받들던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처럼.

 

문제는 이것이 먼 나라의 옛날 얘기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의 중심인 한옥마을, 슬럼화한 이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지켜온 ‘미치광이들’! 이 문화예술 공예인들의 광기어린 열정 덕분에 이 마을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이들이 변방으로 내몰리고 있다.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선지자들처럼. 돈의 논리만이 횡행하는 이 거리에서 예술혼을 들먹이는 일은 미치광이의 넋두리, 상업성에 휘둘리면 ‘민원이 가장 많던’ 옛 슬럼가 시절로 다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해보지만 이미 황야를 맴도는 선지자의 허한 울부짖음 취급이다.

 

하기야 어느 역사에 ‘죽은 시인의 사회’ 아닌 시절이 있기나 했나?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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