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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실장

 

“비서는 입이 없다”

 

지난 2001년 11월 8일 박지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이 청와대를 떠나면서 남긴 한마디의 말이다. 당시 민주당 개혁모임에서 당내 인적쇄신 요구가 분출하면서 그가 주 표적이 됐다. 언제라도 대통령을 독대할 수 있는 최측근으로서 ‘왕특보’ ‘부통령’으로까지 불리면서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할 말이야 많았겠지만 말을 아꼈던 그는 5개월 만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영전하면서 DJ정부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남긴 이 한마디는 이후 청와대 비서진들에겐 금과옥조처럼 됐다. 민감한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피해 나가는데는 이처럼 적절한 말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렸던 이정현 전 정무수석은 “비서는 귀는 있어도 입이 없다”고 첨언하기도 했다.

 

며칠 전 장수군 전 비서실장이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면서 군 금고 협력사업비 3억8700만원을 빼돌린 혐의다. 그는 앞서 건설업자로부터 금품을 수뢰한 혐의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군청 인사와 사업 등도 떡 주무르듯 주물렀다는게 군청 공무원의 전언이다. 비서실장의 비위행각은 민선자치이후 곳곳에서 드러났다. 임실 무주 진안 등지에서 비서실장이 뇌물수수나 선거법위반 등으로 사법처리 됐었다. 부안에서는 비서실장이 승진 인사에 관여하려다 부군수가 저지하자 “밤에 건강 조심하쇼”라며 겁박하는 사례도 있었다. 일부 본분을 일탈한 비서실장의 호가호위(狐假虎威)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도청에서도 한 때 비서실장이 제2 지사라고 불릴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직급은 4급에 불과하지만 국·실장 뿐 만아니라 부지사까지도 비서실장 눈치를 살펴야 할 정도였다는게 당시의 이구동성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한 임실군수 후보는 ‘비서실 청정부서화’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그는 “비서실이 군수와 업자의 거간꾼 역할을 하며 인사개입은 물론 뇌물수수 청탁 등 온갖 불법에 노출됐던 것이 사실”이라며 “철저한 검증을 통과한 공무원을 비서실에 두겠다”고 약속했다.

 

민선 6기 들어 도지사와 교육감을 비롯 14곳 단체장이 선거캠프 출신이나 공직 내부에서 비서실장을 발탁했다.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인사권자인 단체장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명운도 좌우된다는 사실을 뼈에 새겨야 한다.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자세로 공의롭게 처신한다면 명망을 얻을 뿐 아니라 입신의 길도 열린다. 김승수 전주시장이 그 선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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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kwon@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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