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의 시 ‘고향길’이다. 고향에 대한 상실감이 드러나 있는 시다.
산업화, 핵가족화의 현실 속에서 농촌의 고향은 이제 삶의 터전으로서의 기능을 점차 상실해 가고 있다. 문패만 덩그러니 걸린 빈집, 오가는 사람 없이 정적만 흐르는 마을, 석면 투성이의 슬레이트 지붕, 고령화된 마을 사람들….
농촌지역의 고향은 곧 사라져 버릴 것처럼 안타깝고 쓸쓸하다. 하지만 언제, 어느 때든 가슴 설레이게 하는 게 고향길이다.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친척, 그리고 옛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터. 그래서 고향길은 언제나 포근하다.
닷새간의 설 연휴가 시작됐다. 대여섯시간씩 길 위에서 시달려야 하는 고향길은 고행길이다. 그래도 선물 한아름씩 안고 고향을 찾는다. 땅덩어리가 큰 중국에선 오토바이를 타고 일주일씩이나 달려 고향을 찾는다. 기를 쓰고 고향을 향해 달려가는 건 우리나 똑같다. 방송은 마라톤 중계하듯 리얼타임으로 소요시간을 알린다. 애간장만 녹일뿐 별 도움도 안되는 데도.
고향에는 이미 마을 어귀마다 고향 방문 환영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도시지역도 마찬가지다. 다 저 잘되겠다고 떠난 고향인데 ‘△△△자치회’ ‘◇◇◇일동’ 등의 이름을 걸고 환영 플래카드까지 붙이고 나서는 건 다분히 정치적이다. 부모는 고깃근이나 들고 오는 둘째 자식 반기느라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진다. 일년에 기껏 서너번 오는 자식이건만 풀 액션을 보이며 환대하는 걸 보는 농투성이 큰 아들의 심사는 어떨까.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자손들이 생활이 어렵게 되면 선산의 나무까지 팔아 볼품 없는 나무는 남게 된다는 뜻이다. 이를 굳이 사자성어로 옮기면 ‘무용지용(無用之用)’이겠다. 굽어서 산을 지킬 수밖에 없게 된 나무들을 보면 참 아름답다. 고향지킴이들이 그들이다. 명절 때 환영받을 사람은 고향지킴이어야 하지 않을까.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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