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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것은 지난 2011년 12월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시작된 것이 1992년 1월 8일, 이 날은 수요집회가 1천회를 맞는 날이었다. 부부조각가 김운성 김서경씨가 제작해 기증한 소녀상은 열서너 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로 살아야했던 소녀의 슬픈 사연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들 부부는 1991년, 일제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의 삶을 살아야했던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대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미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찾아갔다. 관계자들은 수요집회 1천회 되는 날에 평화의 비석을 세우고 싶다고 들려줬다. 위안부 할머니의 꿈 많던 소녀시절을 돌려주자는 의미를 담은 소녀상은 그렇게 세상과 만났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소녀상’ 이 건립되기 시작했다. 해외에 건립된 소녀상은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시가 처음이다. 소녀상 건립은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반인륜적 전쟁 범죄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활동해온 한인 동포 단체 ‘가주한미포럼’이 주도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지난했다. 글렌데일 시립도서관 공원에 소녀상이 건립되자 재미일본인 극우세력들이 반발하며 ‘소녀상을 철거해달라’는 10만명 청원을 받아 백악관에 전달하고 소송을 제기하면서 한일 갈등이 격화됐기 때문이다. 결과는 다행히 소녀상의 승리로 돌아왔다.

 

광복 70년을 맞은 올해 소녀상 건립이 더욱 활발하다. 전북에서도 군산과 전주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됐다. 모두 시민들이 주도하고 시민들의 성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군산의 소녀상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일제시대 수탈의 상징 도시에 건립되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군산 소녀상 건립에 과거 역사를 반성하며 용서를 구하는 일본인들의 성금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각 도시마다 건립되는 소녀상은 참혹했던 역사를 고발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형상은 조금씩 다르다. 더러는 비장하거나 더러는 고통스럽거나 혹은 밝은 표정의 소녀들이다.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로 살아야했던 할머니들의 모진 생애가 거기 있다.

 

“고향 꿈도 꿀 수 없는 어두운 날 문득 보이는 뒤란의 작은 소녀야/ 하얀 감꽃 주워들고 웃음 짓는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를 어린 소녀야/ 눈 뜰 수 없는 잔인한 날들 피로 물든 다 찢긴 치마 나의 몸/ 옥이 순이 분이라는 그 이름들 이 세상에 없지만 기억하노라.”(김현성 곡)

 

광복 70년. 청산해야할 역사적 과제는 더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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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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