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 1주일 뒤, 오미나토 해군 사령부는 한국인 3725명과 일본 해군 승무원 255명이 우키시마마루호에 승선했으며 이 중 한국인 524명과 일본 해군 25명 등 549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선채 인양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승선자 명부도 공개하지 않은 채 사망자 숫자를 발표한 것은 엉터리 조작에 불과하다는게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더욱이 일본 정부는 정확한 폭발 원인에 대한 규명조차 하지 않아 의혹을 키웠다. 일본은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인한 폭침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의문은 더 증폭됐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기뢰 폭침시 물기둥이 치솟아 올라야하지만 이 같은 현상이 전혀 없었던 데다 두동간난 선체가 안에서 밖으로 휘어져 있었고 배 밑바닥에 360톤에 달하는 돌더미가 쌓여 있었다는 것. 여기에 300여명에 달하는 일본 해군이 폭발 직전 보트로 탈출했다는 점도 고의적 격침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무엇보다 원인 규명과 희생자 수습을 위해선 선체 인양과 사체 발굴이 중요함에도 일본 정부는 유가족들의 줄기찬 요구를 무시한 채 우키시마마루호를 바다 속에 방치했다. 그러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고철 회수를 위해 우키시마마루호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 해체한 후 조각난 선체를 끌어올려 인양했다. 이 과정에서 배 안에 남아있던 많은 사체들이 유실되었으며 370구의 유골만 수습됐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들 희생자들의 위패를 일본 전범자들 위패가 보관된 야스쿠니신사에 함께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키시마마루호 참사는 1912년 북대서양에서 발생한 타이타닉호의 희생자 1523명을 크게 웃도는 대사건임에도 세계 해난사고에 전혀 기록이 없다. 광복 70년을 맞았지만 우키시마마루호 폭침은 아직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의 완전한 광복은 우키시마마루호 희생자 7000명을 비롯 600만 명에 달하는 강제징용자와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선결돼야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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