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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서제 변종

고려시대에 공신 또는 고위관리의 자손이나 친척들은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도 관리가 될 수 있었다. 이른바 음서제(蔭敍制)라고 불리는 제도를 통해서였다. 그 이전에도 나라에 공이 있는 관리들의 자손에게 기회를 주는 일이 있었지만 제도로 확립되어 적극적으로 시행된 것은 고려시대에서다. 고려의 음서제는 그 적용 방식이 다양했다. 같은 음서제 안에서도 왕족의 후예와 공신의 후손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내외원손에까지 해당되었지만, 3품 이상의 관료인 경우는 자손과 수양자 사위 조카 사위 동생에게, 3품 이하 5품 이상의 관료들은 자손에게만 혜택이 주어졌다.

 

음서제로 얻은 관직을 음직(蔭職)이라 했는데, 음서제는 해마다 정기적으로 시행되어 나중에는 음직을 가진 관리가 과거급제자보다 많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능력에 따라 관리를 뽑지 않고 가문의 능력으로 관리를 뽑는 병폐는 컸다. 고려시대 문벌귀족의 정치적 기반을 제공한 것도 이 음서제도였다. 때문에 조선시대에 와서는 음서제도를 통해 기용된 관리를 높은 벼슬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어느 시대에서건 인재 등용은 한 국가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과 정조도 인재등용에 큰 관심을 쏟았다. 사학자 김준태씨가 사료를 바탕으로 세종과 정조가 가상대화하는 형식을 구성해 펴낸 책 <왕의 경영> 에는 인재를 주제로 한 이들 두 임금의 대화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 중 한 부분. 세종이 말한다. “옛 사람들이 말하길, ‘어느 시대인들 사람이 없으랴’고 했다. 인재는 언제나 반드시 있어 왔지만, 다만 몰라서 쓰지 못했을 뿐인 것이다. 인재를 선발할 때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다보면 놓치게 되는 인재가 많은 것 같다.” 덧붙여 말한다. “인재를 선발하는데 있어 정해진 방법이란 없는 것이지 않겠느냐. 다양한 선발 방법을 마련하여 선비들에게 자극을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10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별채용 비리’로 등장했던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이번 논란의 불씨를 당긴 것은 국회의원이다.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이 정부법무공단과 대기업의 변호사 채용을 둘러싸고 사이좋게 논란의 중심에 이름을 올렸다. 공정한 경쟁을 거치지 않고 부모의 능력으로 직업을 얻었으니 오갈 데 없이 ‘현대판 음서제’의 부활이다. 하기야 이 뿐인가. 둘러보면 여기저기서 명분 없는 인사 청탁이 횡행한다. 모두가 차단되어야 할 ‘음서제’변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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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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