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맞서 조선군은 전라도절제사 권율이 이치에서 왜구를 막아냈고 김제군수 정담은 관군과 소양면과 부귀면 주민 등 3000명을 규합해 웅치에서 1만 여명의 왜군과 대치하게 된다. 제1·제2 방어선은 나주판관 이복남과 의병장 황박이 맡았고 정담과 해남현감 변응전은 가장 높은 곳에 제3 방어선을 구축했다. 음력 7월 7일 수천 명의 왜군 선봉부대가 공격해 오자 황박과 이복남이 맞서 적군을 무찔렀으나 이튿날 왜군의 전 병력이 총공격에 나서면서 제1·2 방어선이 무너지고 황박과 이복남도 전사했다. 제3선을 지키던 정담과 군사들도 항복요구를 거절한 채 화살이 다 떨어지자 창과 낫 등으로 백병전을 벌이다 모두 장렬하게 최후를 맞았다. 이후 왜군은 전주성까지 진격했으나 이정란 의병장이 성을 사수하고 있자 결국 공격을 포기한 채 퇴각하고 말았다. 당시 적장 안코쿠지 에케이는 후퇴 도중에 웅치전투에서 순국한 조선군의 시체를 길가에 모아 큰 무덤을 만들고 조조선국충간의담(弔朝鮮國忠肝義膽)이라는 비(碑)를 세우고 그들의 충절을 기렸다고 한다.
지난 21일 완주 소양면 신촌리 웅치전적비에서 소양면 웅치전투기념사업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제423주기 웅치전투 추모행사가 거행됐다. 3년 전부터 지역주민들이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있는 것이다. 앞서 지난 13일 진안 부귀면 세동리 신덕마을에서도 임란웅치전적지보존회 주관으로 추모제를 가졌다. 하지만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3000여명의 순국선열을 기리는 추모제가 면지역 주민행사에 그치고 있는 것은 면목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박성일 완주군수와 이항로 진안군수가 각각 추모제에 참석했지만 전북도나 정부 차원의 인사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1979년 12월 전북도에서 웅치전적비를 세웠지만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한 후속대책은 아직까지 손을 놓고 있다. 하루빨리 웅치전투 추모제를 격상시키고 국가지정문화재 승격과 함께 역사박물관 건립 묘역조성 등 성역화사업을 서둘러야 한다. 역사를 망각하는 부끄러운 후손들이 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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