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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의 힘

중세, 유럽의 수도원은 종교적 영역에서 뿐 아니라 학문과 지식의 거점이었다. 수도원들은 장서를 모으고 필사본 책을 만들면서 점점 소장하는 책들이 늘어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도서관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그 오랜 전통을 가진 도서관 중의 하나, 스위스의 북동부 도시인 장크트 갈렌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도서관이 있다. <장크트 갈렌 수도원 도서관> 이다. 수도원은 612년 아일랜드에서 건너와 움막을 짓고 포교를 했던 성인 갈루스를 기리어 719년 건립됐다. 830년에는 좀 더 새롭게 재건되었는데 9세기에 이르러 종교적으로 뿐 아니라 문화적 경제적 중심지로 번성한 이 도시와 함께 수도원 또한 학문과 지식, 그리고 미술의 중요한 거점이 됐다.

 

이 도서관은 수도사들이 필사를 했던 필사실이 도서관으로 발전한 예다. 수도원은 17,18세기를 관통한 바로크 시대에 두 번째 전성기를 맞아 재건되었는데, 당시 이름난 건축가와 목수, 화가가 참여해 완성한 도서관 역시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천정 벽화와 아름다운 나무기둥과 조각 등이 어우러져 풍경만으로도 큰 감동을 준다.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얻은 장크트 갈렌 수도원 도서관은 그 자체로 예술품이 됐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 수많은 아름다운 책으로 가득찬 ‘지식의 창고’는 수도원의 장엄한 역사를 그대로 전한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책은 역시 수도사의 손끝에서 만들어졌을 필사본들이다. 실제 이 도서관의 보물은 천년이 넘은 중세의 성경들과 주석들이고, 다른 도서관들과 차별되는 특징도 손으로 쓴 필사본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장하고 있는 장서 16만권, 8세기부터 15세기 동안 만들어진 필사본 책이 2천100점에 이르고 1500년 이전에 인쇄된 책의 초기 단행본도 1650점이나 된다. 놀라운 것은 이 도서관이 오늘에 이르러 그저 단순히 옛책을 전시하고 보여주는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이 아니라 도서관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도서관은 ‘영혼의 치유소(Soul Apothecary)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천년 세월을 건너 만나는 옛 책이 주는 감동이 주는 힘이 그만큼 크다.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수없이 많은 날들을 책을 읽고 필사 했을 수도사들의 고행과 그 유산을 지키기 위한 고투가 없었다면 이 위대한 유산이 존재했을리 없다. 결국은 사람의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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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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