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에 따르면 그는 191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논산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농부로 살았지만, 독학으로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24세 때다. 그는 충남 강경여중 등에서 교사로 근무했고, 34세에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입학, 졸업했다. 그는 전북 군산여고에서도 교편을 잡았고, 충남대와 명지대 교수로도 재직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70년에 서울 대성중고, 1978년 천원공업전문대, 호서전산학교,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를 설립했다. 호서대 총장과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 총장을 지내다 65세 정년 퇴임한 그는 1989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2009년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얼마 전 정년 퇴임을 몇 년 앞둔 지인이 카톡으로 고 강석규 박사에 관한 글을 한 편 보내왔다.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라는 제목의 글은 강 박사가 95세 무렵에 쓴 자화상이었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누가 봐도 자랑스럽고 행복한 삶을 영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그가 95세 생일상을 받아놓고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고 하니 영문 모를 일이다.
강 박사의 글은 계속된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내 95세 인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스스로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강 박사는 95세지만 정신이 또렷하고, 앞으로 20년을 더 살지 모른다며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할 105번 째 생일날,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정년은 인생의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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