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행정구역상 서로 다른 자치단체에 분포되어 있는 백제역사유적은 그러한 특징 때문에 더 오랜 시간과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고서야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맨 처음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던 것은 무령왕릉이다. 1994년에 시도됐던 일이니 벌써 20년을 넘어선다. 그러나 무령왕릉만으로는 세계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데 한계가 많았다. 충남도가 공주와 부여의 역사유적지구를 묶어 다시 등재를 추진하고 나섰는데, 그것이 2010년이다. 그런데 같은 해에 익산시도 백제유적지구를 우선 등재 대상 신청에 나섰다. 똑같은 시대 역사유적의 등재 추진 주체가 양분되어 있었던 셈이다.
곤혹스러워진 것은 등재심사를 하는 세계유산위원회였다. 두개 다 대상에서 탈락시키던지, 두 개 다 선정하던지 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 위원회는 이들 유적이 한데 묶여지지 않으면 세계유산이 기준으로 내세우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증명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익산과 공주 부여가 <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추진단> 을 발족하게 된 배경이다. 어찌됐든 이들 자치단체가 마음을 모아 협업(?)으로 등재를 추진한 덕분에 8개 유적은 세계유산이 됐다. 공주부여익산>
사실 한 몸으로 가야만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빛낼 수 있는 여건은 백제유적지구가 안고 있는 태생적 기반이자 특징이다.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닌 각각의 유적이 서로 의지해 더 큰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구현해내는 독창성은 백제역사유적지구만이 갖는 미덕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행보를 보니 이들 3개 지역 백제역사유적은 이제 제 각각 갈 길을 가는 듯이 보인다. 각 자치단체마다 앞장선 홍보의 내용을 보면 더욱 그렇다. 지역을 앞세우고 싶은 ‘애향’ 정서쯤으로 이해하기에는 그 이기심이 불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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