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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갱유

 

독일 베를린의 베벨광장에는 특별한 기념관이 있다. <유대문학 분서기념관> 이다. 이 기념관은 광장 위가 아니라 광장의 바닥, 그 밑에 있다. 위에서 보면 1미터쯤 되는 사각형태의 유리 속에 들어서있는 흰색의 빈 책장. 그것이 기념관의 전부다.

 

1933년 5월 10일, 이곳 베벨광장에 수많은 책이 쌓였다. 토마스 만, 에리히 캐스트너, 슈테판 츠바이크, 하인리히 하이네, 카를 마르크스, 마르틴 루터, 에밀 졸라, 프란츠 카프카 등 유대계 작가들은 물론, 나치정권에 따르지 않는 사회주의 지식인과 종교개혁가의 책들이었다. 그날 이 책들은 모두 불에 타 사라졌다. ‘베를린 분서’였다.

 

당시 독일을 장악한 히틀러에게 가장 시급했던 것은 사상통제였다. 그 선두에 섰던 사람이 나치정권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 그는 ‘비독일인의 영혼을 정화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책을 불태우는 일에 앞장섰다. 분서(焚書)는 베를린에서만이 아니라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행해졌다.

 

분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에 중국 진나라 시대의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있다. 진나라 31대 왕인 시황제(始皇帝)때의 일이다. 시황제는 집권 직후 봉건 제도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의 군현제도로 나라를 통치했다. 겉으로는 나라가 안정되어 가는 듯 했지만 그 폐해가 만만치 않아 그의 통치제도를 비판하는 선비들이 적지 않았다. 시황제는 자신을 비방하고 정치를 비평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군현제도를 입안했던 승상 이사는 황제에게 “옛 책을 배운 사람들 중에는 그것만을 옳게 여겨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선비들이 있다”며 “그런 선비들을 엄단하고 아울러 실용서적을 제외한 모든 사상서적은 불태워야 한다”고 읍소했다. 시황제는 그를 받아들여 수많은 책을 불태우고 관련된 선비들을 산채로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다.

 

‘분서갱유’가 시황제 때에 있었던 일만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세조실록> 과 <예종실록> 에는 세조 3년, 정부가 다수의 서적을 금서로 지정했으며 그 금서를 숨긴자를 참수형에 처했다는 기록이 있다. 분서의 역사는 길다. 시대를 직시하는 지식인들이 책으로 수모와 고초를 당하는 일은 시대와 국가가 따로 없었다.

 

베벨광장의 분서기념관 앞에는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남긴 글이 있다. ‘책을 불태우는 것은 서곡에 불과하다. 책을 불태우는 자는 언젠가는 인간도 불태우게 된다.’ 시인의 예언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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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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