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이 민란이 아닌 혁명으로 대중들 앞에 이름을 찾아 놓이기 시작한 것은 1994년 백주년을 맞은 즈음이다. 이후에도 ‘갑오농민전쟁’과 ‘동학농민혁명’을 두고 학계의 명칭 논의가 뜨거웠지만 2004년 특별법 제정으로 갑오년 역사는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이란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갑오년 역사는 오늘에도 지난하다. 특별법이 제정되고도 10년이 넘는 동안 기념일 제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나, 일본 북해도 대학에서 봉환해온 동학농민군 유골이 아직도 안장되지 못하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 취재를 위해 1993년과 94년, 2년 동안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답사한 적이 있다. 전문가들과 함께 나선 취재였지만 왜곡되고 묻혀있는 갑오년 역사를 들추어 세상에 꺼내어 놓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역사가 기록으로 말하는 것이라면 갑오년의 역사는 온전한 실체를 얻기 힘든 대상이었던 셈이다.
다행스럽게도 100주년을 기점으로 연구자들의 동학농민혁명 연구 작업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숨어있었거나 묻혀있었던 사료가 발굴되어 역사적 사실들이 증명되거나 새롭게 밝혀졌다. 학술연구의 진전은 1996년 동학농민혁명 사료를 30권으로 체계화한 〈동학농민전쟁 사료 총서〉 발간으로 이어졌다. 소중한 성과다.
이 사료를 바탕으로 동학농민혁명 자료를 엮은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지난 2015년 6월 출범시킨 동학농민혁명기록물세계기록유산등재추진위원회가 그 주체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1894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종합 기록이다.
동학농민군 임명장과 회고록, 동학농민군 진압에 가담한 관료와 진압군의 공문서와 보고서 등의 조선정부 기록, 민간인의 문집 및 일기, 동학농민혁명을 목격하거나 전해들은 개인의 견문기록, 그리고 일본 측 관련 기록물 등 171건의 자료가 망라되어 있다. 이 기록물은 세계적으로도 예를 찾아보기 힘든 사료로서의 가치를 평가 받는다.
전문가들은 사료의 희귀성면에서도 그렇지만 시간과 공간, 사건의 주체가 각각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기록한 자료라는 점에서 그 완전성을 주목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은 세계사적으로 조명 받아야 할 역사다.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에 마음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