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8 07:29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미당 탄생 100년

미당 서정주(1915~2000)의 ‘국화 옆에서’는 40대 이상 중년들에게 ‘국민시’였다. 이 시는 90년대 초 시인의 친일논란과 함께 교과서에서 퇴출됐다. 그렇다고 미당을 빼놓고 어찌 한국 현대문학을 말할 수 있을까.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된 후 6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해온 미당의 삶은 곧 우리의 현대문학사다. 곡기를 끊고 2000년도 부인을 따라갔던 미당을 두고 고은 시인은 ‘시(詩)의 정부(政府)가 스러졌다’고 애도했다. 미당은 생전에 15권의 시집과 1000편의 시를 발표했다. 토속어를 적극 활용해 전통적 정서를 환기시키기도 하고, 불교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영원성의 지향을 보여주며,인간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화음을 시에 담았다. “미당의 시는 모국어의 위대하고 오묘한 성취”라는 극찬도 따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독재시절 몇 편의 친일 시와 군부 찬양 시가 그의 문학적 성취에 굴레가 됐다. 교과서에서 그의 시를 볼 수 없게 된 것은 물론, 그의 장례식도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러졌다. 작고한 뒤 시인을 기리는 활동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의례적인 데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빛나는 문학적 업적을 시인 스스로 배반한 업보인지도 모르겠다. 올해가 미당 탄생 100년이 되는 해이지만 그를 기리는 사업 역시 잔잔하기만 하다. 지난 6월 동국대에서 미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잔치 및 시전집 출판기념회가 고작이었다.

 

미당 탄생 100년을 기념하는 일은 미당 개인을 우상화하는데 있지 않다. 문학적 성과와 함께 친일·독재 찬양의 행태에 대한 비판도 따라야 한다. 중요한 점은 미당 문학이 한국문학의 큰 자산이라는 점이다. 특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시 ‘자화상’에서 말할 만큼 미당의 문학 바탕에는 고향 고창의 정서가 듬뿍 담겨있다. 생전의 영욕을 뒤로 하고 미당이 잠든 곳도 고향 ‘질마재’다. 미당의 문학적 성취는 곧 전북과 고향 고창의 문학적 자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고향에서 그를 더 외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행이 지역 원로급 문인들을 중심으로 올 미당문학회를 만들어 지난 주말 미당 탄생 100년을 기리는 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전북도와 고창군 등 자치단체들의 관심은 여전히 미흡하다. 고향을 품었던 미당을 이제 고향 사람들이 안아줘야 할 때다. 그것이 한국문단과 전북의 문화적 자산을 위한 길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원용 kimwy@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