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일제강점기와 독재시절 몇 편의 친일 시와 군부 찬양 시가 그의 문학적 성취에 굴레가 됐다. 교과서에서 그의 시를 볼 수 없게 된 것은 물론, 그의 장례식도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러졌다. 작고한 뒤 시인을 기리는 활동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의례적인 데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빛나는 문학적 업적을 시인 스스로 배반한 업보인지도 모르겠다. 올해가 미당 탄생 100년이 되는 해이지만 그를 기리는 사업 역시 잔잔하기만 하다. 지난 6월 동국대에서 미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잔치 및 시전집 출판기념회가 고작이었다.
미당 탄생 100년을 기념하는 일은 미당 개인을 우상화하는데 있지 않다. 문학적 성과와 함께 친일·독재 찬양의 행태에 대한 비판도 따라야 한다. 중요한 점은 미당 문학이 한국문학의 큰 자산이라는 점이다. 특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시 ‘자화상’에서 말할 만큼 미당의 문학 바탕에는 고향 고창의 정서가 듬뿍 담겨있다. 생전의 영욕을 뒤로 하고 미당이 잠든 곳도 고향 ‘질마재’다. 미당의 문학적 성취는 곧 전북과 고향 고창의 문학적 자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고향에서 그를 더 외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행이 지역 원로급 문인들을 중심으로 올 미당문학회를 만들어 지난 주말 미당 탄생 100년을 기리는 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전북도와 고창군 등 자치단체들의 관심은 여전히 미흡하다. 고향을 품었던 미당을 이제 고향 사람들이 안아줘야 할 때다. 그것이 한국문단과 전북의 문화적 자산을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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