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까지만 해도 상여가 그리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마을공동체가 주도했던 전통상례를 위해 마을마다 상여소리꾼이 있었고, 상엿집도 있었다. 이 상례의 상징인 상여는 편리함과 빠름을 좇는 생활문화의 변화에 밀렸다. 시신이 입는 옷이 수의라면 상여는 관이 입는 옷이며, 상엿집은 상여가 입는 옷이라 할 수 있다. 관이 입는 옷인 상여를 대신하는 게 자동차가 된 것이다.
문화재청은 생활문화 속에 거의 소멸된 전통상례를 지키기 위해 2010년도 경북 경산의 상엿집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했다. 경북 영천의 한 동네에 방치됐던 상엿집을 옮겨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기까지 문화재 애호가의 노력이 컸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그 주인공인 나라얼연구소 황영례 소장이 경산에서 100회가 넘는 로컬인문학 특강을 열고, 장례 관련 국제학술 세미나를 개최하며 전통상례 지킴이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런 황 소장보다 훨씬 앞서 전통상례 보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축제로 이어온 이가 신정일 우리땅걷기 이사장이다. 신 이사장은 지난 86년 섬진강 방수리에서 상여놀이를 시작해 30년째 축제로 끌어오고 있다. 옛 사람들에게 전통상례가 한 판 축제였다는 데서 출발했다. 그가 지난 주말에도 전주한옥마을에서 전통 상여놀이를 펼쳤다. 길문화축제의 이벤트로 기획된 상여놀이가 진행되는 동안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의 큰 볼거리가 됐다. 청연교(옛 남천교)에서 경기전까지 20여개의 만장과 상여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최근 몇 년간 한옥마을 상인들의 반대로 전주천변에서 열렸던 상여놀이가 도심 속, 시민 속으로 들어온 것도 전통문화를 새롭게 받아들이려는 변화다. 상여놀이를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축제로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해야 한다는 최근의 분위기도 한몫했다. 집회와 축제 현장에 서로 다른 의미로 등장한 꽃상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김원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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