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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대한 예의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저자인 김성호 서남대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이 책은 지리산에서 우연히 만난 오색딱따구리 부부가 새끼를 낳아 기르는 과정을 50일 동안 지켜본 기록이다. 그는 오색딱따구리의 일상을 관찰하기 위해 딱따구리가 둥지를 튼 고목나무 옆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새벽 4시에 들어가 밤 10시에 나오는 고된 일상이었다. 이후 김 교수는 다시 강원도에 서식하고 있는 까막딱따구리의 일상을 관찰하는데도 1년을 보냈다. 그 결실 역시 책으로 엮어졌다. 그런데 책을 펴내고 난 뒤 김 교수는 자신의 관찰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새끼를 길러 떠나보내고 나면 둥지를 모두 떠나는 것으로 알았지만 실제 아빠 새는 그 둥지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김 교수는 겨울에도 아빠 새가 둥지를 지키는 광경을 담아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눈이 내리면 둥지에 들어가 좀체 나오지 않는 까막딱따구리의 특성 때문이었다. 그해 겨울, 김 교수는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으면 어김없이 강원도의 까막딱따구리 서식처를 찾아갔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치기 일쑤였다. 주위 사람들은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어렵게 이어가는 김 교수에게 조언했다.

 

‘나무 밑동을 몇 번 치면 나올 텐데 왜 그리 바보스럽게 기다리고 있느냐’고.

 

김 교수가 딱따구리를 만나면서 스스로 만들었던 원칙이 있다. 그들의 삶에 스며들듯이 딱따구리의 일상을 존중하며 관찰하겠다는 것이었다. 밑동을 쳐서 딱따구리를 나오게 하는 일은 그 원칙을 버리는 일이었다. 카메라 렌즈를 고목나무 둥지를 향해 놓고 기다리기 여러 날.

 

함박눈이 내리는 아침이었다. 김 교수가 눈을 맞대고 있는 카메라 렌즈 안으로 까막딱따구리 수놈이 얼굴을 쑥 내밀었다.

 

“아저씨 참 어지간하네요. 그래요. 내가 한번쯤은 내밀어 줄게요.” 김 교수는 그 순간 딱따구리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경이로웠던 그 풍경은 어김없이 김 교수의 렌즈에 잡혔다. 그의 섬세한 관찰력이 아니었으면 딱따구리의 특성을 바로 잡을 수 없었을 터다. 한편의 동화와도 같은 이 이야기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자연과 생명을 향한 예의와 존중, 그 의미와 가치다.

 

둘러보니 자연과 생명을 훼손하는 인간의 욕심이 넘쳐난다. 개발로 훼손시키는 것도 모자라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카메라에 담겠다며 산하를 뒤지고 다니는 무례한 자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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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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