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걸개그림이 요즘에는 일반 행사나 사업장의 개업 이벤트까지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선거철이면 걸개그림이 전국을 펄럭인다. 고층 건물마다 걸개그림으로 뒤덮여 걸개그림 공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걸개그림이 곳곳에 내걸리며 벌써 선거철에 들어섰음을 알리고 있다.
걸개그림은 후보간 경쟁으로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목 좋은 곳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 설치에 따르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건물구조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당 평균 2만∼3만원대다. 가로·세로 각 10m 크기로 할 경우 1개당 300만원 정도. 선거법상 3개까지 내걸 수 있어 대략 1000만원대 비용이 들어간다. 건물을 뒤덮기 때문에 창문이 가려져 입주자들의 양해를 구해야 하고, 입주 업체의 간판도 별도로 설치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따른다. 그럼에도 입지자들이 보다 크고 화려한 걸개그림을 거는데 비용과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것은 그만큼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리라.
정치인들이 자신을 더 널리 알리는 방법으로 걸개그림을 활용하는 일을 타박할 수는 없다. SNS나 다른 첨단매체의 활용,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덩그러니 큰 얼굴과 이름으로 가득 채운 정치인의 걸개그림은 민주화과정의 단물만 빼먹는 것 같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정치를 통해 사회를 바꾸고 문화를 일으키겠다면 적어도 도시미관까지 생각했으면 한다. 얼굴만 분칠하지 말고 이 땅 시민들의 마음을 담아 공감을 끌어냈으면 좋겠다. 훗날 그 걸개그림만 모으면 당대의 삶과 문화를 읽을 수 있는 예술성 높은 전시회가 되는, 그런 정치인의 걸개그림을 기대한다면 무리일까. 김원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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