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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나무 이야기

김용택 시인의 집은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에 있다. ‘진뫼’란 이름을 얻은 마을 앞에는 섬진강 물이 흐르는데, 나지막한 긴 산과 넓지도 좁지도 않은 강줄기가 서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이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어찌나 잘 자랐는지 얼핏 보기에는 수백 년 된 당산나무가 아닌가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실상 이 나무의 수령은 50년이 채 안 된다.

 

나무는 시인이 스물일곱 살 되던 해 뒷산에서 캐다 심은 것이다. 그 후로 시인은 기회만 되면 온갖 거름을 다 가져가 나무에게 주었다. 나무는 잘 자라 마을을 지키는 아름드리 큰 나무가 되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은퇴한 시인은 이제 강연을 다닌다. 강연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나무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나무는 정면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름답죠. 우리 삶을 보세요. 우리는 정면만 보고 삽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며 살지 않죠. 그래서 아름다운 것,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고 있는 겁니다.’

 

시인은 가르치던 아이들에게 비가 오면 비를 보여주고, 바람이 불면 운동장을 뒹구는 나뭇잎을 보여주었다. 어느 해인가는 자기 나무를 하나씩 정해주고, 1년 동안 그 나무를 바라보게 했다. 아이들이 글로 옮겨 쓴 나무 이야기는 놀라웠다. 나무의 변화만이 아니라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 할아버지들 이야기, 그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과 건너편 들판의 모내기하는 사람들의 풍경이 아이들의 마음에 담겨있었다.

 

시인은 무엇인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아이들로부터 배웠다.

 

시인은 어느 순간이든 자기에게 오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나무 같이 살아보라고 권한다.

 

‘받아들이는 힘이 있을 때만, 자기의 새로운 모습을 세상에 그려낼 수 있다. 받아들일 때만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우뚝 세울 수 있다.’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인생을 잘산 사람들에게도 이런 특징이 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 말이 옳으면 내 생각과 행동을 바꿔나가는 것이 하나고, 자기가 하는 일을 자세히 보는 것이 또 하나다. 둘러보니 스스로를 바꾼 힘으로 세상을 바꾸어 가는 사람들은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들이란 말에도 고개 끄덕여진다.

 

‘세상을 자세히 보다보면 나도 보이고 이웃도 보이고 자연도 보인다’는 시인의 말. 새해 아침,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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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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