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벽지의 어린 중학생은 전주에서 입시를 치른 후 폭설을 만났다. 전주에서 남원까지는 차편이 있었으나 10킬로가 넘는 산골 집까지 교통이 두절되면서 어린 수험생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차가운 바람과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악천후 속에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자정이 다 돼서야 집을 갔다. 현재 고위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눈이 올 때면 지금도 그 때 일을 떠올린단다. 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이런 눈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갖고 있다.
전 지구촌이 한파와 눈폭탄으로 꽁꽁 얼어붙었다. 미국 북동부에서는 눈폭탄으로 주말 대중교통이 전면 중단되며 10여개 주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68㎝의 눈으로 도시가 마비된 뉴욕시는 야간 차량통행을 금지시켰다. 이번 눈폭풍은 미국에서 ‘스노마겟돈(snow+armageddon)’ ‘스노질라(snow+godzilla)’로 불리며 미국 전체 인구의 4분의 1인 8500만명이 피해를 봤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제주도에 강풍을 동반한 많은 눈이 내려 주말 여행객들이 발이 묶이는 등 한파와 폭설이 남긴 피해는 컸다. 전주에서는 제설작업이 초기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교통대란이 빚어지면서 제설 행정에 비난이 쏟아졌다. 비교적 눈이 많은 편인 전주시의 제설 행정은 노하우가 쌓여 그간 크게 흠잡을 데가 없었다. 밤새 내린 눈 때문에 출근길을 걱정할 때 다음날 아침 잘 치워진 도로가 오히려 고마울 때가 많았다. 이번 교통대란의 경우 기상청이 이미 대설주의보를 예보한 상황에다 초기 적설량이 많지도 않은 상황이기에 시민들의 원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제설작업의 당부를 떠나 산골 학생이 걸었을 산길 모습에 자꾸 눈이 간다. 낭만의 상징이었던 눈이 요즘 교통 장애가 되는 것으로 밖에 비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그 흔한 눈싸움, 눈사람 만들기, 눈사진찍기 등 아이들의 눈놀이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많은 눈이 쌓여도 제설작업이 이뤄져야 하고, 그 길을 편안히 가는대만 익숙해졌다. 전주 백제로를 온통 주차장으로 만들 만큼 교통지옥을 눈앞에 보면서도 꾸역꾸역 차를 운행하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 한 번쯤 제설작업을 미루고 차량 대신 걸어서 출퇴근 하는 날로 정하자면 순진한 낭만일까. 인터넷·스마트폰이 있어 출퇴근을 그리 꼭 서두르지 않아도 될 법한데 오히려 더 빠름만 추구하니 이도 시대적 흐름 탓으로 돌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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