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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목자 지정환 신부

지난 4일 법무부로부터 한국 국적 증서를 받은 지정환 신부(85·본명 세스테벤스 디디에). 이날 법무부의 국적 증서 전달식에는 건강 악화로 인해 지 신부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한국에 온지 57년 만에 진짜 한국인이 됐다.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된 국적법에 의해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외국인에게는 특별 귀화를 허가함에 따라 지 신부는 그동안 임실 치즈 개발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와 장애인 복지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 국적을 부여받았다. 이 규정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은 지 신부를 포함해 현재 9명이다.

 

벨기에 귀족 가문출신인 지 신부는 지난 1958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1959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 희망을 심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1961년 부안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지 신부는 부안군청으로부터 간척사업 허가를 받아 3년에 걸쳐 여의도 면적의 두 배가 넘는 100만㎡(30만평)에 달하는 농지를 개간해 이를 가난한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

 

1964년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지 신부는 당시 문필병 임실군수로부터 “임실군민을 위해 뭔가 하나 남겨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지인으로부터 산양 2마리를 선물 받은 지 신부는 농민들의 자활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산양 젖을 이용한 치즈가공에 나섰다. 3년 동안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이탈리아에 가서 치즈생산 기술을 배워 와 마침내 한국 최초로 치즈 개발에 성공했다. 이것이 임실 치즈의 시작이었다. 벨기에 부모님으로부터 2000달러를 지원 받아 1967년 치즈공장을 세우고 서울의 특급호텔과 명동 유네스코회관에 국내 최초로 들어선 피자가게에 치즈를 공급하면서 임실 치즈는 날개를 달았다. 현재 임실치즈피자 프랜차이즈업체만 20여개에 임실치즈를 사용하는 음식 브랜드가 70여개에 달하면서 지역 경제파급 효과가 1000억원을 넘고 있다.

 

지 신부는 1970년대 말 발병한 다리 마비증세로 인해 1981년 귀국해 3년간 요양을 한 뒤 1984년 다시 한국을 찾아 전주시 인후동에 아파트를 전세 내 장애인을 위한 집을 열었다. 이후 천주교 재단의 지원으로 완주에 중증장애인 재활센터인 ‘무지개 집’을 설립했다. 또 2002년 호암상 사회봉사상으로 받은 상금 1억원과 사재를 털어서 ‘무지개 장학재단’을 만들고 2007년부터 매년 장애인 학생 20~30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현재는 완주 소양면 해월리 ‘별 아래’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평생을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한 지정환 신부. 그는 작은 예수로서의 삶을 실천하는 성직자의 표상이자 이 시대의 참 목자(牧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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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kwon@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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